캠퍼스 밖 나온 인문학, 사람들 찾아 토닥토닥

입력 2013-12-07 07:04:41

용학도서관 "강좌마다 100여명 참석"…교도소·지자체 등 수강 '북

지난달 27일 달서구의 한 아파트 도서관에서 열린 찾아가는 인문학 강좌. 달서구청 제공
지난달 27일 달서구의 한 아파트 도서관에서 열린 찾아가는 인문학 강좌. 달서구청 제공
10월 31일 계명대 성서캠퍼스 동천관에서 열린
10월 31일 계명대 성서캠퍼스 동천관에서 열린 '600회 특집 목요철학인문포럼'에서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강의하고 있다. 계명대 제공
4일 중구 봉산문화거리 내 문화공간 G에서 열린 중국사 강좌.
4일 중구 봉산문화거리 내 문화공간 G에서 열린 중국사 강좌.
수성구립 용학도서관이 마련한 인문학 강좌에는 많은 주민들이 참석해 인문학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용학도서관 제공
수성구립 용학도서관이 마련한 인문학 강좌에는 많은 주민들이 참석해 인문학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용학도서관 제공

각박하다. IT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 삶이 기계적으로 변했다. 길을 걸으면서도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도 모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도 없고 남의 일에 관여하는 것도 간섭받는 것도 싫어한다. 인간적인 정이 사라지고 사회가 황폐화되고 있을 때 인문학이 구원등판했다. 동네 도서관이나 문화센터 등에서 마련한 인문학 강좌를 통해 일반 시민들도 인문학을 경험하고 있다. 인문학 관련 강의를 신청하는 직장인들도 늘고 있다.

◆교도소에서도 인문학 강좌

4일 오후 대구 중구 봉산문화거리 내 '문화공간 G'. 문화대혁명, 중국외교정책 등 중국 근현대사에 대한 공부가 한창이었다. 강사로 나선 이원영 씨. 중국 근대사를 전공한 그가 G2로 떠오른 중국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최근 벌어지는 미국과의 외교경쟁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분위기는 자유분방했다. 10여 명의 참석자는 농담과 웃음을 섞어가며 떠들썩하게 토론을 하다가도 이내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강의가 진행됐다. 일방적인 강의가 아닌 질문과 토론이 이어지는 쌍방향 모임이었다. 어떤 형식이나 틀로도 규정지을 수 없는 인문학 모임의 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모임에 참여한 손창용 대구시의사회 기획이사는 "8년째 이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생활에서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강의다"고 소개했다.

대구경북 곳곳에서 인문학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계명대학교는 시민들과 소통하는 인문학 프로그램을 8년째 계속하고 있으며 경북대학교 인문대학도 시민을 대상으로 '생활 속 인문학 강좌'를 수시로 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대학, 연구소 등과 함께 답사, 스토리텔링, 체험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지역 역사와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동네로도 퍼졌다. 공공도서관이나 민간 문화센터 등에서 잇따라 인문학 강좌가 개설되면서 원하는 이는 언제 어디서든 인문학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다. 소외계층 사람들과 함께하는 인문학도 활기를 띠고 있다. 노숙자, 재소자, 빈민, 성매매 여성 등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프로그램도 성황이다. 경북대는 3일 대구교도소와 인문학 강좌 개설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내년 4월부터 경북대 교수들이 대구교도소를 찾아 인문학 강의에 나선다.

백승균 계명대 목요철학원장은 "대구경북의 인문학은 그 뿌리가 깊다. 계명대 목요철학인문포럼이 대표적이다. 지난 10월에는 600회를 맞기도 했다. 단일 학술강연회로서는 국내외 유일무이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대구경북의 이 같은 인문학 전통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동네로 찾아가는 인문학

지자체들이 인문학 전파에 앞장서고 있다. 물질만능주의 풍조 속에 점차 사라지고 있는 마을 공동체 문화를 복원해 인간미 넘치는 사람 중심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다. 대구의 경우 기초자치단체 수준에서 움직임이 활발하다. 달서구청은 2011년 인문학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2012년부터 찾아가는 동네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여성영화부터 부부문제 등 다양한 주제와 강의가 재미있기로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타지역에서도 강의를 듣기 위해 일부러 찾을 정도다. 주민 김은희(40) 씨는 "인문학은 어려운 게 아닐까 생각했다. 또 강의를 듣기 위해 대학이나 문화센터에 가기도 힘든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대학교수들이 직접 동네로 와서 역사나 문화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니 문화생활을 제대로 즐기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중구청은 풍부한 역사'문화 자산을 활용해 도심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골목투어, 거리 축제 등이 활성화되면서 주민의식까지 바뀌고 있다.

칠곡군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인문학 메카 만들기 프로젝트'도 눈길을 끈다. 칠곡군은 2010년부터 인문학 아카데미를 월 2회 개최하고 경북대와 함께 인문학 특강을 매주 개최하는 한편 평생학습 인문학 축제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칠곡군 관계자는 "국내 석학을 초빙해 강의를 듣는 인문학아카데미부터, 60, 70대를 위한 황혼의 인문학, 학부모와 함께하는 청소년해오름인문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경제가 아니라 문화적 지표가 중요한 시대인 만큼 인문학을 통해 군민들이 행복한 도시로 만들 계획이다"고 했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은 지난가을 매주 금요일마다 '2013 하반기, 독(讀)한 인문학'이라는 제목으로 강좌를 열었다. 이곳에서는 전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인문학 강의 시리즈를 연다. 또 방학 때는 재능기부자들이 강사로 나서 주민들을 인문학의 바다에 풍덩 빠뜨린다. 이 도서관 서명혜 팀장은 "인문학이 이렇게 인기가 있을 줄 몰랐다. 매번 강좌마다 1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참석하고 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강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역과 서울 쪽 강사를 안배하고 대학교수나 사회 저명인사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하고자 애쓰고 있다"고 했다.

◆토종 강사 육성해야

인문학 열풍에도 불구하고 공부가 만만치는 않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인문학에 접근하지만 달달 외우고 공부하느라 지친다. 또 남들에게 인문학이라는 '고급 교양'을 향유하는 모습을 연출하느라 피곤하다. 게다가 인문학 열풍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얌체 기업들도 기생하고 있다. 이전의 교양 강좌를 인문학으로 포장해 판매하는 사례도 나온다.

직장인 김성헌(44) 씨는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어 관련 자격증을 따야 하는데 최근에는 회사에서 인문학 관련 강좌도 들으라고 권하고 있다. 공부할 종목과 스트레스만 늘었다"고 푸념했다. 일부 백화점은 인문학 강좌를 개설해 고객을 모으는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최근 모 백화점에 따르면 올해 인문학 강좌 수강생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을 찾는 30대 이상 여성 VIP 고객들이 여가를 인문학 강좌를 듣는 데 쓰고 있다. 이들을 백화점 안에 묶어 두며 쇼핑이나 식사 등으로 연결해 매출을 발생시키는 전략이 숨어 있다"고 귀띔했다. 또 기존 교양 강좌가 인문학으로 이름을 바꿔 등장하기도 한다. 주부 김정희(35) 씨는 "지난해 지역의 한 백화점에서 듣던 교양 수업이 이름만 '인문학'으로 바뀌어 올해도 재등장했다. 강사와 강의 내용은 그대로였다"고 했다.

김규종 경북대 인문대학장은 "스마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성의 타락과 물질 숭배에 따른 가족 간 살인이 일어날 정도로 인륜이 땅에 떨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의 하나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이다"고 반겼다. 그러나 "인문학이 최근 급격하게 상업주의로 이용되고 있다. 소수 명망가나 서울의 몇몇 강사들을 위한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지역에도 인문학 강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인재들이 많다. 이들을 활용해야 인문학 뿌리가 튼튼해진다. 이를 위해 관련 단체가 서로 소통하고, 연대해야 한다. 정보도 공유하고, 인문학 강사 풀을 확보해야 한다. 강사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서울에서 강사를 불러오게 되는데 아쉬운 점이 많다. 또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 강좌나 책이 부족하다. 성인 영역에 비해 매우 취약하다"고 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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