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까머리에서 대학 시절까지 여러 번 봤던 소설 가운데 하나가 김성한이 1956년에 발표해 제1회 동인문학상을 받은 바비도였다. 단편이어서 읽기도 좋고, '일찍이 위대한 것은 이제 부패하였다'라고 시작하는 첫 문장은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라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의 처음처럼 강렬하고, 솔깃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제목은 15세기 초, 라틴어가 아닌 영역(英譯) 성경을 읽었다고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한 영국의 재봉 직공 이름이었다. 그는 사제와 태자의 회유에도 끝내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죽음을 택했다. 단 한 번의 거짓 회개만으로도 목숨은 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비도가 재판을 앞두고 독백으로 되뇌는 말 가운데 '무슨 까닭에 벽을 문이라고 내미는 것이냐?'라는 문장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그가 직면했던 절망의 깊이를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이 문장이 점점 현실이 된 것은 오래지 않았다. 어느 한순간 부모와 가족, 학교, 사회는 대화할 수 없는 벽처럼 다가섰고, '모든 것은 벽 안의 또 다른 벽돌일 뿐'이라는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극단적인 노랫말에도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벽을 문이라고 들이미는 사례는 곳곳에 있다. 주변국은 제멋대로 남의 땅에 줄을 긋고, 사회는 온갖 비리로 가득한데 여야는 아직도 주도권 다툼이다. 국제, 국내, 개인 문제를 가리지 않고 조금의 이해관계라도 있으면, 서로에게 끝없이 벽을 문이라며 들어오라고 끌어당기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염치, 배려가 없다.
독일의 분석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오류는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로 하는 데서 생긴다'라고 했다. 이를 바비도의 독백과 섞으면 '모든 오류는 벽을 문이라고 강요하는 데서 생긴다'라고 원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말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벽과 문이라는 상반된 낱말을 같은 것이라고 우기며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 문제다.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기는 어렵다. 그러나 해결의 출발점은 아주 단순하다. 내게는 손잡이를 돌려 열기만 하면 탄탄대로로 들어가는 더없이 넓은 문이 다른 이에게는 도저히 들어갈 수도, 넘을 수도 없는 철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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