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죽어가는 영혼이 속삭이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했지만, 나는 우리 어머님한테서 배울 것이 하나도 없어요. 마지막이 되시니까 저한테 역정만 내세요." 젊은 며느리가 하소연했다. 난소암에 걸린 홀시어머니가 외동 며느리를 타박하는 것이 좀 심하다 싶었다. 닭죽이 먹고 싶다고 해서 해오면 사온 음식이라 성의 없다 했고, 어린 손자 때문에 자주 올 필요 없다고 해놓고서는 하루라도 거르면 섭섭하다고 병실이 떠나갈 정도로 절규했다.
뛰어난 악기 연주자에게 악기를 배운다고 해서 꼭 연주를 잘하는 것이 아니듯이 역경을 이겨낸 인격의 완성자가 곁에 있다고 해서 인생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은 아니다. "신문에 실리는 사건들 중에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가 더 많은 것처럼 삶의 끝자락에도 그랬어요. 남편을 간병사에게 맡겨두고 설악산 단풍놀이 가는 아내도 있었고, 시아버지를 간병하면서 따뜻한 말 한 번 하지 않고 팔짱만 끼고 있던 며느리도 있었어요. 여기서라도 숨겨둔 갈등을 풀면 좋지만 못 풀고 가는 것도 인생이더군요. 아마 제가 쓴 책에는 보기 딱한 사연을 차마 글로 남기기가 뭣해서 지독했던 이야기는 없었을 거예요." 내 경험담을 조근조근 들려주었다. 다음 날, 며느리는 손수 끊인 버섯 죽을 따뜻하게 가져오느라 교통 딱지까지 떼였다고 겸연쩍게 웃었다.
인생은 쓰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저절로 쓰이는 소설책이다. 때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응어리를 안고 끝까지 살아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사랑하는 가족한테서조차 멀어지기도 한다.
돈 한 푼 없는 청각장애인이 입원했다. 나는 글로 그는 말로 대화를 했지만 힘들지 않았다. 다만 전직 의사라는 점은 까다로웠다. 쓰고 있는 약의 성분을 근거 있는 문헌과 함께 일일이 다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다른 환자보다 회진시간이 두 배로 길었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그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20년 전, 그는 잘나가던 외과 의사였다. 원인불명의 병으로 하루아침에 귀가 들리지 않자 직업도 가족도 모두 잃었다. 그가 살아온 중간 부분을 다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검버섯이 잔뜩 오른 그의 얼굴을 찬찬히 보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생명의 건전지가 다할 때까지 살아내는 그가 이 시대의 영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모르핀에 대한 오해 때문에 마약성 진통제 쓰는 것을 매우 꺼렸다. 20년 전의 의사 교육에는 모르핀에 대한 것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 모르핀을 적극적으로 처방하도록 그에게 허락을 얻었다. 통증이 조절되자 그는 "선생님, 고마워요"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가 인생 스승이었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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