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후배들이 시를 써 오면
스스로 찢어서 버리라고
한 평론가의 신랄함을 빌어
그것도 백 미터 떨어진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가끔 시인들이 시를 발표하고 어떠냐 물으면
지금은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지
철이 들어서가 아니고
겁이 나서
길 없는 길
절간 사람들이 휜 법거량을 주고받으며
내 공부가 어디쯤 왔나 시험을 하듯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출렁이는 그늘
제 안의 울음통을 간신히
몸 밖으로 조금 꺼내놓은 줄 아는 까닭에
길 아닌 길
조그만 통 하나 가리키며
이것이 길이냐고 묻는 까닭에
그 힘으로 통이 통을 굴려 간다는 걸
이제는 나도 좀 아는 까닭에
-계간 《시와 산문》 2011년 봄호
벌레들은 울음통을 대체로 짝짓기할 때 쓴다. 각자의 문자소리로 최선을 다해 구애한다. 애절하다. 내 소리를 누군가 감응하고 맞장구쳐 주길 고대하는 마음은 말 안 해도 알 것 같다.
인간 세상의 울음통은 울음의 속된 말이다. 인간의 울음도 몸속 어딘가에 있는 통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자. 그 울음의 원인을 시로 끄집어내었다고 생각해보자. 인간의 울음이 어떻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아픔을 드러냈을 때 위로는커녕 면박만 돌려받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문청시절의 나도 선배들에게 시를 보여주었다가 면박을 받은 적이 더러 있다.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결국 싸움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시보다는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 더 서러웠다. 세상은 공짜가 없는 법. 선배들이 느꼈을 낭패감을 후배들로부터 고스란히 돌려받으면서 깨달았다. 요즘 내가 시를 읽을 때 쓴 사람의 마음을 먼저 찾는 버릇도 그렇게 해서 든 것이다. 이 시와 동병상련이다.
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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