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남았다, 이름을 얻었다…'지역화가만 상설 전시' 프로그램 시작

입력 2013-11-08 07:29:24

황금잔의 현자,,Acrylic on Canvas,162x130,2013.
'달의 현자'와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하고 있는 김길후.
황금잔의 현자,,Acrylic on Canvas,162x130,2013.

가창에 있는 동제미술관에서 대구 미술에 새로운 획을 긋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양화가 김길후(김동기)의 '달의 현자'전이다.

지난달부터 내년 5월 말까지 열리는 '달의 현자'전을 시작으로 동제미술관은 앞으로 김길후 화백의 작품만 전시하기로 했다. 페인팅, 드로잉, 설치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김길후의 작품을 전시한다. 주목받는 지역 출신 작가와 지역 미술관이 '대구 미술의 새 역사'를 쓰기로 한 것이다.

명성을 얻으면 서울로 가거나 서울로 가야만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지역 미술계의 흐름에 변혁을 시도한 것으로 앞으로 김길후 화백의 그림을 보고 싶으면 서울 사람들도 대구로 오라는 것이다. 물론 서울과 다른 도시, 해외에서도 전시를 할 수 있지만 상설 전시공간은 대구라는 말이며, 대구를 또 하나의 미술 중심도시로 만들어가겠다는 말이다.

동제미술관 시여리 관장은 "대구 출신 화가와 대구 화랑, 대구 컬렉터들이 함께 작가를 키우고 미술관을 키우고, 미술을 키워 대구에서 세계적인 화가, 세계적인 미술관을 만들자는 뜻에서 뭉쳤다"고 말했다.

대구 관람객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김길후는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다. 미국 뉴욕 메리분 갤러리 디렉트 토마스 아놀드는 "김길후의 검은 색은 매우 감각적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어디에서든 거의 항상 무엇인가를 발견하곤 한다. 비록 작은 반짝임일지라도 어둠 속에서 빛을 찾게 된다. 그가 자신의 작품에서 어둠을 표현하면, 우리는 그 어둠의 문을 열어보고 싶어진다"고 극찬했다.

또 2014년 3월부터는 서울과 중국 베이징에서 뉴욕 페이스 갤러리 전속 작가인 중국의 송동 화백과 2인전을 열고, 뉴욕 드로잉센터에서 김길후의 드로잉을 연구할 만큼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다.

김길후의 원래 이름은 김동기였다. 올해 이름을 바꿨다. 호적까지 바꿨다. 이름을 지우는 행위는 자기살해인 동시에 새로운 탄생을 은유한다. 김길후는 "이제야 내 이름을 찾았다. 김길후가 원래의 내 이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김길후는 어둠을 그린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는 희망이 숨어 있다. 김길후는 "희망은 보장된 약속이 아니다. 나는 희망을 바라보며 걸어갈 뿐이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지만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그것이 희망이고 사람살이다"고 말한다. 작가는 "지혜로운 사람보다 어진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어진 사람이 되고 싶다. 지혜로운 사람은 전쟁에서 이길지 몰라도 어진 사람은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전시 주제 '달의 현자'는 서양의 이성이나 지혜가 아니라 동양의 어진 사유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가 갈구하는 '희망'은 어진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김길후의 작품을 바라보면 어떤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에 대해 작가는 "내가 의도했던 혹은 기대했던 무엇이 은근하게 비칠 때까지, 그리고 지우고 그리기를 반복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작품 한 편을 완성하는데 단 하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단 하루를 위해 2, 3년이 필요하다고 했다. 2, 3년 동안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날 자신이 원하는 그림이 나온다는 것이다. 김길후는 주로 흑백을 이용해 어둠을 그리는데, 어찌 된 일인지 관객은 그 어둠에서 빛을 발견하게 된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