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철의 '별의 별이야기] 홍상수 감독 연출 영화 '우리 선희' 선희 역 정유미

입력 2013-10-10 14:09:27

인터뷰하는 내내 깔깔'호호…단골 '우울 캐릭터' 믿어지나요

배우 정유미(30)는 언젠가부터 홍상수 감독의 뮤즈가 됐다. 지난 3년간 '옥희의 영화' (2010), '다른 나라에서'(2011)에 이어 올해 '우리 선희'에까지 등장했다. 이전 작품까지 합하면 총 6번이나 호흡을 맞췄다. 천재 감독을 자극하는 여인의 역할을 한 듯하다.

하지만 정유미는 "페르소나, 뮤즈라는 등의 말은 좋지 않다. 홍 감독님에게는 다른 분들도 계시지 않나. 또 그런 말은 진부한 표현이기도 하다"고 웃었다. 물론 '안 좋다'는 게 이분법적 의미로 부정적인 말은 아니다. 페르소나나 뮤즈라는 수식어는 아직 '무한 보류'로 해야 더 정확할 듯하다.

"오랫동안 좋은 감독님과 작업을 하고 싶고, 영화에서도 다양한 캐릭터를 하며 오래 만나고 싶다. 그런데 감독님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면 관객들이 싫어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감독들과도 작품을 통해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이유가 있기도 하다. 천생 팔색조 연기자 혹은 욕심 많은 연기자다.

정유미는 사실 자신이 홍 감독의 15번째 영화 '우리 선희'에 합류할지 몰랐다. 지난해 영화 '깡철이'와 다른 작품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 제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음주 장면 거듭 실수…이선균 진짜 취해

"사실 제가 또 감독님 영화에 참여하게 될 줄 생각하지는 못했어요. 전화가 와서 '뭐하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특별한 일은 없는데 영화 들어갈 준비 하고 있다'고 하니 '잘 됐다. 이틀만 나올래?'라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는데 '준비하는 게 방해되지 않는다'고 하셨죠. 이틀만 하기로 했는데 뭐가 바뀌었는지 (전체 6회 촬영 중) 네 번 나와야 한다고 하셨어요. '다른 작품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니 감독님이 '바보 같은 소리! 너 많이 찍히면 좋지'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참여하게 됐어요." (웃음)

정유미는 잡생각과 고민이 많았는지 '우리 선희' 촬영 첫날 NG를 많이 냈다. 극 중 이선균이 정유미 앞에서 소주를 유리잔째 마시는 장면이 특히 그랬다. 거듭된 실수에 이선균은 알딸딸한 상태로 취해 버렸다.

"주목을 받아서 부담됐었나 봐요. '말렸다'는 표현을 써도 될까요? 연기가 잘 안 되더라고요. '대사 잊어버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때문에 또 실수하고 그랬죠. 감독님이 화내지는 않으셨느냐고요? 화는 절대 안 내세요. 그냥 (홍 감독 특유의 느릿하고 저음의 목소리를 따라 하며 ) '야, 너 그러면 안 돼…' 정도? 헤헤헤."

'우리 선희'는 외국 유학을 가려고 교수에게 추천서를 받으러 오랜만에 학교에 온 선희(정유미)와 그의 주변 인물들인 학과 교수(김상중), 오랫동안 사귀다 이별했던 전 남자친구(이선균), 한때 미묘한 감정이 있었던 학과 선배(정재영)가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극 중 정유미는 세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역할로 나온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묻자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세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마음에 드느냐고 하자 또 웃으며 "없다"고 했다. 연애의 슬픈 경험사를 좀 들으려고 했더니 애착을 가진 데뷔작 '사랑니'(2005)를 언급하며 "영화에 나왔던 강아지를 내가 키웠는데 죽었다. 정말 슬퍼서 집 앞에서 소주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이후 힘들 때도 절대 술을 먹진 않는다"고 했다. 엉뚱한, 혹은 노련한 매력 발산이다.

'우리 선희'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 남자가 선희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른 듯 비슷하다. 현실 속 정유미가 가장 듣기 좋았던 다른 사람의 평가는 뭐였을까?

"영화 연출을 잠시 쉬시던 감독님이 저를 보고 '저 친구 보니깐 다시 영화 찍고 싶다'고 한 말이 가장 감동적이었어요. 물론 전해 들은 얘기지만요. 또 그게 지금도 유효한 건지는 모르겠고요. (웃음) 저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평가를 해주냐고요? (엄지를 치켜세우며) '대박!' 이거죠. 안 좋았을 때는 뭐라고 말 못하는 편이고요. 하하하."

정유미는 인터뷰 내내 웃었다. 장난도 잘 쳤다. 엉뚱하기도 했다. 낮고 무거운 역할을 주로 맡는 그와는 전혀 다른 매력이 철철 넘쳤다. 쉽게 말해 유쾌함 그 자체다. 전작들을 언급하며 다른 감독님들이 정유미 안에 내재한 또 다른 모습을 못 보는 것 같다고 하자 맞장구친다.

"그러게요. 할 수 있는데 안 시켜주더라고요. 다들 우울한 것들만 보시고, '저런 것 했던 쟤가 이걸 하겠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언젠가 안목 있는 분이 나타나시겠죠! 뭐. (웃음) '로맨스가 필요해' 작가님과 회식 자리에서도 '그래, 열매(정유미가 극 중 맡은 캐릭터 이름)야. 너 이런 성격이야. 그런데 이걸 사람들에게 말해줘도 모른다? 아무리 말해줘도 안 믿어'라고 하시더라고요. 뭐 어쩔 수 없죠. 기다려야죠. 호호호."

다양한 경험하고파 애니메이션 더빙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작품들에 참여하고 싶다"는 정유미. 내용을 보고 정말 마음에 들어 작은 제작 규모의 애니메이션 더빙을 차기 활동으로 정했다. "이미 캐릭터가 완성된 인물이라 연기를 하며 감정몰입을 하던 작품과는 또 다르더라"며 어려움을 토로한 그는 자신이 선택한 것들 잘 해내고 싶다고 바랐다. 연기 잘하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는 그인데 엄살을 피우는 것 같다. 엄살인지 아닌지는 조만간 스크린을 통해 확인하면 될 듯싶다. 당연히 아닐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정유미를 아끼는 이들은 최근 개봉한 '깡철이' 속 정유미 캐릭터에 불만이 많다. 비중도 크지 않고, 존재감은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좀 더 많은 로맨스를 기대했는데, 치매 등으로 고생하는 엄마와 아들 이야기가 내용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도 정유미는 괜찮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 같긴 하다"며 해맑게 웃었다. 역시 정유미는 좋은 배우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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