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복지 강권하는 사회

입력 2013-10-10 11:24:24

'중앙정부는 복지 천국으로 망하고 지방정부는 축제 천국으로 망한다'고 한다. 역으로 중앙정부는 복지 포퓰리즘에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지방정부는 생색내기용 행사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엔 복지 쓰나미가 몰아치고 있다. 기초연금을 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더니 여성 육아휴직 확대, 주당 근로시간 단축 등 논란이 될 복지 정책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씩 평생 준다던 기초연금은 애초부터 태어나지 않았어야 했다. 이는 모든 노인을 생활보호 대상자로 몰아가는 발상이었다. 결국 하위 70% 노인에게 10만~20만 원을 차등 지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이 역시 상위 30%를 제외한 나머지 노인을 영락없이 생활보호 대상자로 만들어 놓은 꼴이다. 100년 복지 선진국이라는 스웨덴도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던 기초연금을 2009년 폐지했다. 대신 하위 45%의 노인들에게만 선별 지급하는 쪽으로 바꿨다.

0~5세 무상보육 확대는 또 어떤가. 이는 지난 대선 때 여'야 모두의 공약이었다. 새 정부 들어서자마자 국회는 이를 통과시켰다. 포퓰리즘의 산물이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0~2세 자녀를 둔 여성 취업률이 보육 시설 이용률보다 낮은 유일한 나라가 됐다. 취업 여성이냐 전업주부냐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보육'양육비를 지원하는 바람에 생긴 결과다. 무차별적으로 보육료를 지원하니 집에서 키울 아이를 어린이집으로 내몰았다.

무상급식도 있다. 부유층 자녀까지 나랏돈으로 밥을 먹여야 하는가를 두고 논란을 빚었지만 결국 모두에게 지원하는 쪽으로 결정됐다. 재벌 자식이든 가난한 집 아이건 모두 국가가 밥을 먹인다. 결국 예산 마련에 허덕이던 한 지자체가 중단을 선언했다.

이번에는 새누리당과 고용노동부가 육아휴직 확대를 들고 나왔다. 육아휴직 대상 연령을 현재의 6세 이하에서 9세 이하로 확대키로 한 것이다. 3세 미만에 적용하던 육아휴직을 만 6세 이하로 범위를 넓힌 것이 2010년 2월이다. 법이 또 개정되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육아휴직 대상이 가장 넓게 적용되는 국가가 된다. OECD 대다수 국가는 육아휴직을 3세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육아휴직 확대는 여성 고용 제고라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여성 채용을 어렵게 하는 부메랑이 된다. 고용 시장에서 오히려 여성 채용을 기피하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온갖 복지 공약을 내걸고 이를 지키려다 보면 나라 살림이 거덜 난다. 집권 정부 시절 표가 나면 다행이지만 후세에 표가 난다.

표 얻겠다고, 공약 지키겠다고 나라 곳간을 마구 퍼내면 국민들은 복지 예산을 눈먼 돈쯤으로 여긴다. 들어올 돈은 빤한데 새는 곳은 많으니 미래 국가 부도 위험은 커진다. 지금 유럽 여러 나라가 이를 겪고 있다. 복지 천국이라 불리던 유럽 국가들이 복지 축소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복지 쓰나미를 일으키고 있다.

대가는 나랏빚에서 읽힌다. 2010년 393조 원이던 정부 빚은 2011년 420조 원, 지난해 443조 원으로 늘었다. 현 정부 임기가 끝나는 2017년에는 610조 원까지 늘 것이다. 이 빚은 순수한 정부 빚이다. 정부가 공공기관에 떠넘긴 빚이나 통화안정증권 등을 포함하면 빚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게다가 정부는 내년도 25조 원의 적자재정을 예상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3연임에 성공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성공 비결로 '건전재정 운용' '부채 탕감 거부' '빚을 수반한 정부 지출 불허' 등 3가지를 들었다. 메르켈은 국가 부채 상한제를 도입하고 납세자들의 부담을 늘리는 어떤 유럽연합(EU)의 제안도 거부했다. 마른 수건도 쥐어짜며 국가 부채율을 낮추려 한 메르켈의 지도력에 국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 화답했다.

복지란 한번 국민들에게 맛을 보여주면 나라가 파탄 나지 않으면 폐지하기가 어렵다. 국민들은 내 주머닛돈을 더 내놓기보다는 복지를 늘리지 않아도 좋다고 말한다. 무턱대고 복지 정책을 쏟아내기보다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복지제도를 먼저 재정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일하게 하고 복지 혜택은 실질적으로 누려야 할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복지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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