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양의 Food 다이어리] 셰프의 또 다른 자격, 푸드 디자이너

입력 2013-09-26 14:27:27

초콜릿색이 얇게 들어간 체크 패턴의 테이블보 위에는 먹음직스럽게 생긴 스테이크가 놓여 있다. 신부대기실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새색시 얼굴처럼 스테이크에서 광채가 난다. 뽀얀 유니폼을 입은 셰프는 연신 붓으로 스테이크에게 볼 터치를 한다.

오늘은 새롭게 선보이는 스테이크의 프로필 사진을 찍는 날이다. 스테이크가 가장 먹음직스럽게 보이기 위해, 그린 색의 아스파라거스와 브로콜리가 조연을 맡았다. 하얀 세라믹 접시 대신 비비드한 레드컬러의 스타우브 주물팬이 등장했다. 물컵 크기의 작은 화병에는 그린 퐁퐁 수국과 화이트 리시얀셔스가 소담하게 담겨졌다. 아소토 맬리온, 옐로 퐁퐁, 일레온스 로즈가 옐로계열로 톤 온 톤(tone on tone)으로 담긴 화병도 놓아 본다. 두 컷 다 찍기로 한다. 이렇게 꽃 단장을 하고 최고의 컨디션으로 찍힌 스테이크의 사진은 메뉴판과 레스토랑의 입구의 배너와 광고용 전단에 사용되고, 홈페이지 팝업 창에도 띄워진다. 레스토랑에서 관리하고 있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블로그에도 예쁘게 등재된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식당에서 사진 찍는 일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볼륨감이 있는 DSLR을 들고 식당에 나타나면 식당주인은 이 카메라를 든 손님에게 신경을 썼다. 파워 푸드블로거가 카메라를 무기 삼아 식당에서 서비스를 요구한다고 심심찮게 도마 위에 올랐다. 또 옆 테이블의 손님에게 방해가 되기도 하니, 식당에서 사진 찍는 일을 자제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식당주인은 자기가 개발한 신 메뉴와 인테리어 정보가 새어 나갈까 봐 사진 촬영을 저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 식당에 가 보면 20, 30대 젊은이들은 식사 전에 기도를 꼭 하는 독실한 크리스천처럼 우선 찍고 본다. 음식 사진을 찍고, 자기 얼굴 찍고, 음식을 들고 맛있게 먹는 포즈를 한 컷을 찍는다. 이 모든 동작이 아주 자연스럽고 신속하다. 푸드블로그를 운영하는 필자로서는 이런 분위기가 반갑고 좋다. 재료와 맛이 좋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손님의 시각을 만족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이제는 소위 사진발을 잘 받는 플레이팅을 궁리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블로그를 타고, 페이스북을 타고 번져간다. 손님의 발걸음을 끌어 당길만한 임팩트가 강한 비주얼을 가진 한 접시가 필요한 것이다.

서울 이태원에서 히트를 친 '부자피자'는 기존의 복숭아 피부 같은 보드라운 비주얼의 하얀 도우 대신에 연탄불에 그을렸을 법한 불규칙적으로 탄 자국이 점박이처럼 박혀 있다. 화덕에서 제대로 구워져 나온 느낌이 나는 그 한 장의 사진은 많은 사람들의 식감을 자극하였다.

청담동의 브런치카페로 인기가 있는 '콩부인'에서 판매되는 에너지드링크라는 이름의 과일, 야채주스는 화분을 식탁 위로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비주얼이 독특하다. 주스 글라스에 샐러리가 한 송이 장미꽃처럼 꽂혀진다. 사과, 당근, 샐러리, 배 등의 재료를 사용하고 1만원이 훌쩍 넘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마셔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한다.

필자는 작년 가을 교토에서 도도한 여인네의 얼굴을 마셨다. '요지야카페'라는 곳에서 판매하는 이 녹차라떼는 여심을 마구 흔든 라떼 아트를 그려낸다. 인터넷에서 일본여행 정보를 정리하는 중 발견한 이 사진 한 장이 필자를 오사카에서 교토로 발길을 옮기게 만들었다. 요지야는 이 여인의 캐릭터를 사용하여 중저가의 화장품을 판매하는 회사이다. 손톱만한 콩알스시 도시락에 있는 오징어초밥 뒤에 숨겨진 색종이로 오려낸 듯한 앙증맞은 토끼모양의 다시마는 잔영도 꽤 길다. 이제 셰프는 푸드디자이너로서 웹이라는 세계무대에서 멋지게 활약해야 할 시대이다.

푸드 블로그 '모모짱의 맛있는 하루'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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