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 세계의 희망으로] <12>봉사단원들의 동아프리카 지역

입력 2013-09-26 07:31:45

"검은 대륙서 새마을 씨앗 뿌리기 1년…결실 맺기엔 아직 짧지만…"

새마을봉사단은 새마을 세계화사업의 첨병이다. 특히 탄자니아와 에티오피아, 르완다 등 아프리카 3개국에 파견된 봉사단원들은 1년 넘게 낯선 기후와 문화적 차이, 의사소통의 한계 등을 이겨내며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지난 3년간 아프리카에 파견된 새마을봉사단원은 214명에 이른다.

지난해부터 올 8월까지 각 나라에서 활동한 새마을봉사단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르완다 무심바마을의 권오영(60) 팀장과 키가라마마을의 서정기(23) 씨, 탄자니아 팡가웨마을의 김영관 씨, 에티오피아 아둘랄라마을의 마나영(27'여) 씨와 마이멕덴마을의 제갈은향(24'여) 씨 등 5명이다. 이들은 "한국에 돌아온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 아프리카의 모습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사라지지 않는 아프리카의 잔상

▷김영관: 요즘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안부 전화가 와요. 전화가 오면 받지 않았다가 끊어지면 바로 다시 되걸죠. 그 사람들에겐 국제전화비가 정말 큰돈이거든요. 돌아오기 이틀 전, 꼭 마을에 들르라고 해서 갔더니 온 주민들이 다 모여서 세레모니를 하더군요. 작별의 인사와 전통춤을 추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그곳에서 과분한 대접을 받았던 것 같아요. 아픈 아홉 살 아이가 머리에 소쿠리를 이고 가다가 저를 보곤 뛰어와서 바나나를 안겨주고 가는데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아프리카 사람들이 원조받는 것에만 익숙하다는 건 터무니없는 얘기에요.

▷제갈은향: 떠나는 날이 다가오면서 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우울했어요. 그런데 가난한 주민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전통옷을 맞춰주고 꽃다발을 주며 눈물을 흘리고, 차로 15시간이나 떨어진 공항까지 나와서 배웅을 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어요. 아, 이들에게 내가 중요한 사람이었구나 하는 느낌이죠. 봉사단 활동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유럽 여행을 했는데요. 영국 런던의 한인민박에서 "여긴 전기 안 끊기죠?"라고 물었다니까요. 수세식 변기에서 물이 내려가는 게 신기할 정도였어요. 그만큼 아프리카에 적응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마나영: 한국에 돌아와서도 아프리카 사람을 보면 어느 국가 출신인지 물어보고 싶고, 반갑고 그래요. 뜨거운 거리를 걷던 기억, 국제 NGO와 협력해서 아이들을 치료해주던 기억도 잊을 수 없어요. 특히 생후 20개월 된 백내장에 사시까지 겹친 아기의 수술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온 건 아직도 아쉬워요.

◆험난했던 현지 적응기

▷서정기: 양계장 사업을 했는데요. 임시로 고용한 경비원이 닭을 몰래 가져다 팔아먹은 일이 있었어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이죠. 그런데 닭을 훔쳐가는 현장에서 범인을 붙잡아 경찰에 넘겼는데 그 자리에서 훈방 조치를 하는 거예요. 정말 어이가 없었죠. 사실 현지 주민들은 젊은 봉사단원들이 현지 상황을 잘 모른다고 생각해요. 신뢰를 잃는 경우가 많죠. 양계장 사업을 할 때인데 현지인들 간 이견이 많았어요. 주민들과 내기를 했죠. 먼저 달걀을 팔아오는 사람의 의견을 따르기로. 저는 이미 시장별 달걀 시세와 사육 정보 등을 파악한 상태였거든요. 저는 100~120프랑이 시세인 달걀을 80프랑에 팔아서 1시간 만에 완판을 했고, 새마을회원은 시세대로 팔다가 못 팔고 돌아왔어요. 그 일 이후에는 제 의견을 잘 따라주더군요. 시장에 나가 막연하게 팔던 달걀을 현지 도매상에 연결하고 한인 빵집에 납품하는 등 판로를 열었어요.

▷김영관: 아프리카 지역 대부분이 그럴 거예요. 팡가웨마을에서도 망고나무 600주를 심었는데 1주일 뒤에 보니까 200주가 사라지고 없어요. 발자국도 나 있고, 훔친 흔적도 있어요. 가만히 보니까 나무를 심었던 작목반이 훔쳐간 거예요. 마을 이장과 주민들에게 도둑을 잡아내라고 했더니 다들 난감한 표정만 지어서 황당했죠. 그런데 함께 우갈리를 먹고 얼굴을 익히며 부대끼다 보니 그런 일도 사라지더군요.

▷권오영: 집에 도둑이 들어 노트북과 카메라 등 거의 모든 소지품을 도둑맞았어요. 그런데 그게 주민들이 아니라 외지인의 소행이더군요. 오히려 집에 든 도둑을 주민들이 때려잡기도 하고, 집 주변에 선을 긋고 보호해주기도 했어요. 벼농사 시범농장에서도 쌀 4.2t이 생산됐는데 나중에 보니까 판매 담당자 2명이 모두 바뀌었더라고요. 두 사람이 쌀을 빼돌린 건데 이 사실을 안 주민들이 그들에게 변상을 시키고 담당자를 바꿨어요. 믿고 맡기니까 되더라고요.

▷마나영: 저는 바구니 판매 사업에 애착이 많이 갔어요. 그냥 집에서 만들던 바구니에 색을 입히고 디자인을 더해서 품질을 높였어요. 판로를 찾는 게 문제였는데 건기에만 문을 여는 국제 교회에서 많은 물량을 팔았죠. 작은 소품도 만들어서 제품 종류도 늘렸고요.

▷제갈은향: 주민들과 친해지는 게 숙제였어요. 문맹률이 높은 주민들을 위해 영어를 티그레이어로 번역해서 동영상에 자막으로 붙이고 현지 교육자가 읽으면서 교육을 했어요. 또 매주 정기회의를 열어서 사업 진행 상황과 계획을 알려주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의견을 내놓도록 했죠. 체육대회도 두 차례 열었고요.

◆아프리카는 19세기와 21세기가 공존하는 곳

▷김영관: 파견 기간이 1년인데 너무 짧아요. 소득 사업으로 농업을 주로 하는데 1년은 현지 토양이나 기후를 파악하기도 빠듯한 기간입니다. 현지 정보도 거의 없고요. 8월에 도착해서 현지 교육을 받고 적응을 하다 보면 서너 달이 훌쩍 가버려요. 귀국 준비할 기간을 빼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기간은 6개월밖에 없죠. 서두르다 보면 실패 확률이 높아지고 단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집니다.

아프리카는 19세기와 21세기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현실은 1970년대지만 매일 보고 듣고 접하는 건 2013년 현재입니다. 중간 과정이 없어요. 거기에서 오는 괴리감이 굉장히 큽니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현실이 한국의 1970년대와 비슷하다 해서 70년대의 정형화된 새마을운동을 가져와서는 안 됩니다.

▷권오영: 새마을운동을 교육하는 건 절대 욕심을 내거나 서두르면 안 돼요. 돈이 된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하죠. 사실 농업은 전문 지식이 중요한데 그런 지원이 없어요. 사전 조사도 중요합니다. 저는 마을 주민 320가구를 다 돌아봤지만 역사나 문화, 전통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마을의 현황과 주민들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현지화된 사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새마을 세계화사업에 대한 이론 정립도 필요하죠. 국가별 비전에 적합한 사업을 가져가야 시너지효과도 날 겁니다. 방법론을 바꿔야 해요.

▷마나영: 에티오피아는 관개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비가 오지 않아서 농업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농촌개발사업 자체가 진행이 안 돼요. 한국에서 하는 정형화된 새마을운동은 먹히지 않아요. 현대화된 새마을운동이 절실해요. 현대문명이 급격하게 흡수되고 있는데 옛날 방식으로는 반발만 사게 되죠.

◆인생의 전환점이 된 봉사활동

▷권오영: 명예퇴직한 지 이틀 만에 아프리카에 갔어요. 새로운 인생을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셈이죠. 공무원으로 새마을 관련 부서에서 7년 동안 일했던 경험을 살려서 현지 사정을 경북도에 전하고, 정책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완충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김영관: 조금 더 젊었을 때 가봤으면 더욱 많은 걸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가 갔던 마을의 새마을운동 사업이 마무리되는 해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제가 추진했던 사업들이 어떻게 변화되고 마무리되는지 보고 싶습니다. 세상을 배우고 좋은 경험이 됐죠.

▷마나영: 국제원조개발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현장에서 실무를 맡아 해보니 정말 큰 재산이 된 것 같아요. 앞으로도 사회공헌과 관련한 일을 한다면 지금의 경험이 큰 통계가 되고 자료가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느껴요.

▷서정기: 책상머리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정말 재미있고 매력적인 활동이었어요.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설득할 수 있을지도 배웠고요. 인격 향상이 된 거죠. 올해는 누나가 르완다 무심바마을에 봉사단원으로 파견됐는데요. 내년에는 아버지가 가실 예정이에요. 온 가족이 봉사단원이 되네요.

▷제갈은향: 저는 한국에서는 항상 감정을 숨기고 감추는 데 익숙했어요. 그랬던 제가 그곳에서 1년을 보내면서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이 됐어요.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진 게 가장 큰 수확이죠. 정리=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