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만어] 가을 야구

입력 2013-09-24 07:26:39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이맘 때가 되면 10대 소년마냥 가슴이 쿵쿵 뛴다는 이들이 많다. 포스트시즌을 앞둔 프로야구 때문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분은 5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모든 구단 선수들의 이력을 줄줄 꿰고 있다. 삼성팬이지만, 다른 팀이라도 자신이 좋아하거나 유망주로 꼽은 선수를 응원하기도 한다. 야구를 정말 사랑하는 분이다. 필자의 경우 포스트시즌이 되면 삼성 경기를 보는 정도일 뿐, 그만한 열정은 없다. 그나마 야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과거 한 시즌동안 야구를 취재한 경험 덕분이다.

20년 전인 1993년에 체육부에서 야구를 담당했는데 현재에도 야구계를 호령하는 기라성같은 이들이 현역으로 뛰고 있었다. '국민타자' 이승엽은 얼굴에 여드름 숭숭한 고교 2년생이었고, 삼성의 간판타자 이만수(SK 감독)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승엽은 어릴때부터 멋진 선수였다.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청룡기대회 군산상고와의 결승전에서 8회 동안 무실점으로 호투하던 모습을 지켜본 기억이 난다. 이만수는 전해인 1992년 22개의 홈런을 쳤으나 그 해에는 홈런 5개로 급전직하, 경기에 못 나오는 경우가 잦았고 그로 인해 코칭스태프, 구단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요즘 TV에서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는 양준혁은 그 해 타격왕과 신인왕을 동시에 차지한 거물 신인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정작 해태와의 한국시리즈에서 2할에 못미치는 타율로 부진했다. 양준혁은 대구시내에 마스크를 쓰고 다닐 정도로 부끄러워 했지만, 해태에게 진 것은 그의 탓이 아니다. 해태 선동열의 카리스마가 대단하기도 했지만, 삼성과 해태의 선수단 분위기 차이가 컸다. 해태는 고참 선수들이 모범을 보이며 팀이 부진할 때에는 단체로 배트를 칠 정도였던 반면 삼성의 단결력은 모래알 수준이었다. 선수들의 스타의식 때문인지, 대구경북인의 기질 때문인지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요즘 야구는 20년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선수 운용과 관리가 체계적이고 분업화됐고, 선수단 통제도 엄격해졌다. 과거처럼 밤새 술 마시고 덜깬 채 시합에 나서는 선수도 없다. 명실상부한 프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어쨌든 야구를 즐기기엔 가을이 제격이다. 이맘 때가 지나고 나면 야구시즌도 끝난다. 무엇보다 연고지팀인 삼성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는 것만 해도 큰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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