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인물] 일제핍박 속 여성영역 넓힌 고종비 엄씨

입력 2013-09-23 07:00:53

어릴 때 궁녀가 되어 고종 황제의 계비(繼妃'임금이 다시 장가 들어 맞은 아내)로 고종의 막내인 일곱 번째 아들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1897~1970)을 낳은 순헌황귀비 엄씨(1854~1911)는 입지전적 여성이다. 영친왕의 일본인 부인 이방자(李方子)의 시어머니인 엄 씨는 고종의 총애로 명성황후(민비)의 시샘을 받아 1885년 궁밖으로 쫓겨났다 1895년 황후 시해 뒤 다시 궁궐로 돌아왔다.

1896년 고종의 러시아 공사관 피신(아관파천)을 도왔던 엄 씨는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마흔 넷에 이은을 낳고 상궁에서 귀인, 순빈으로 지위가 격상됐다가 1901년 오늘 '순비'로, 이듬해엔 '황귀비'로 책봉됐다. 엄 씨는 문벌, 지위 도움보다 스스로의 뛰어난 정치적 감각과 능력으로 조선 여성의 최고 자리에까지 올랐다. 특히 인재양성의 절실함과 여성교육에 관심을 두었고, 이는 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1905년 양정의숙(현 양정고등학교), 1906년 진명여학교(현 진명여고)와 명신여학교(현 숙명여대)를 세웠다. 또한 교원 및 학생 지원도 아끼지 않았고 다양한 사회활동과 자선활동으로 조선여성의 역할을 넓혔다.

그러나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 이후 고종 퇴위, 아들 영친왕의 강제 일본유학으로 시련을 겪었고 결국 1911년 여름 장티푸스로 58년의 생을 마쳤다. 근대 여성의 기반과 활동영역 확대에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인열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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