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봉사…경험하지 않으면 모를 기쁨"
대구서 기술학원을 20년 가까이했다. 돈도 벌었고 사람도 벌었다. 1988년 세상이 바뀌면서 학원운영이 옛날만큼 되지 않았다. 학원을 접었다. 40대 후반이었다.
김경도 (67'대구시 수성구 상동) 씨. 가지고 있는 10개가 넘는 기술자격증을 활용할 생각으로 남구자활지원센터의 센터장을 맡았다. 그때부터 이웃의 아픔이 눈에 들어왔다.
일을 저질렀다. 1980년대 후반 처음으로 달성공원에서 무료급식을 시작했다. IMF 때는 1천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봉사를 하려니 돈이 필요했다. 사찰 순례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1990년대 중반 사찰순례모집은 대박이 났다. 한 달에 버스 300대가 출발했다.
어르신과 떠나는 사찰순례가 제일 즐겁다는 김 씨. 그의 아름다운 동행에 함께했다.
-봉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봉사는 기쁨이다.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즐거움이다. 자신을 낮출 줄 아는 마음이 생기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을 얻고 배운다. 학교 앞 등'하굣길 교통 도우미를 하는 한 친구는 '할아버지 고맙습니다'는 학생들의 그 한마디에 신이 나서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봉사는 나를 춤추게 하고 이웃을 즐겁게 만드는 악기와 같은 것이다."
-달성공원 무료급식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급식을 시작한 1980년대 후반에는 달성공원에 입장료가 있었다. 돈이 없는 노인들이 입장료를 내고는 온종일 굶으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무료급식을 생각하게 됐다. 급식 첫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국수를 대접했는데 세 그릇을 먹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보통 800명이 식사하러 왔다. 그것을 18년 동안 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맡아서 하고 있다."
-봉사를 하다 보면 세상인심의 변화를 잘 알겠다.
"갈수록 인심이 팍팍해지고 있다. 후원하는 기업이나 사람은 점차 줄고 어려운 사람들은 늘어만 간다. 힘들게 사는 노인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남구 이천동은 집값이 싸서 홀몸노인들이 많다. 이것도 부담스러워 더 싼 집으로 옮기느라 10번 이상 이사한 노인들이 많다. 가슴 아픈 현실이다."
-사찰순례 아이디어로 대박을 터뜨렸다.
"어려운 이들을 도우려니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 사찰순례였다. 1990년대 중반 처음 시도해 히트를 했다. 직접 버스를 빌리고 사찰에 대한 해설을 맡았다. 성의껏 했더니 반응이 좋았다. 전국적으로 사찰순례가 유행처럼 번졌다. 지금도 한 달에 네 차례 사찰순례를 떠나고 있다. 간절하게 원하니까 길이 열린 것이다. 기도의 힘이다."
-봉사 때문에 주변 사람을 잃었다고 했다. 이유가 궁금하다.
"전화를 하면 곧잘 받던 지인들이 이제는 내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후원을 해달라는 아쉬운 소리만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웃음) 백번 이해한다. 염치없는 일이다. 지면을 빌려 미안함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부인은 잘 이해해 주는 편인가.
"아내(장영숙'60)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각종 시설에 가서 다도를 가르치며 차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있다. 10년 정도 됐다. 서로 하고 싶은 곳을 찾아가서 봉사하고 있다."
-보람도 컸겠지만 가슴 아픈 기억도 많겠다.
"홀몸노인들에게 도시락 무료배달을 할 때였다. 겨울이면 홀몸노인 상당수가 거동이 불편해 굶는 경우가 많다. 도시락을 갖다 드리면 그걸 나누어서 온종일 드신다. 다음 날 가면 깨끗하게 씻어놓은 도시락에 알사탕이 들어 있기도 했다. 그 알사탕을 보며 목이 멘 적이 한두 번 아니다. 그만큼 사람이 그립고 정이 그리웠던 것이다. 자식들이 한 번도 찾지 않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주검에도 가슴이 아팠다.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한 부모들이 왜 그렇게 쓸쓸히 초라하게 가야 하는지…. 먹먹했던 순간이 많았다."
-상담도 하고 있다.
"부부문제 상담이 가장 많다. 상담하러 온 이들은 앉자마자 상대방을 원망하고 비난한다. 모둔 문제가 상대방 탓이라고 생각하면 답이 없다. 기도하고 내 마음부터 바꾸어야 해결의 길이 열린다. 부부 사이가 좋아져 함께 찾아오는 이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힘들지 않나.
"힘들어 머리까지 다 빠진 거 아닌가.(웃음) 이 나이에 매일 출근할 곳이 있고 한 달에 네 번 산수 좋은 절을 찾아다니며 할머니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모든 어려움이 사라진다."
-꿈이 있다면.
"세상이 더 여유 있고 따뜻해졌으면 한다.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손 한 번 잡아 줄 수 있는 그런 삶의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굶는 사람이 없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식들로부터 버림받는 부모가 없었으면 한다. 멋지고 아름다운 꿈이 많을 텐데 이런 꿈을 이야기하는 자체가 슬프다. 행복한 노인이 많은 세상이 진짜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듯하다.
"자식에게 기대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즐겁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부모가 돼서 자식의 말 한마디나 태도에 일희일비해야 하는가? 자식에게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독립된 삶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건강을 위해 애쓰고 좋은 일 많이 하면서 행복하게 살면 된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나라는 존재는 아주 소중하다."
-지금도 매일 출근하고 있다.
"불교봉사단체인 108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매일 출근하다. 여기에다 사찰여행을 안내하며 즐거워하는 내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부러워한다. 그럴 때면 숲 생태해설사나 마술 같은 것을 배워 봉사하라고 말한다. 봉사는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것도 가슴 벅차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기쁨을 많은 사람들이 누렸으면 한다."
-자식들의 반응은?
"1남 1녀 모두 아버지 어머니처럼 나이가 들면 봉사하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도 적지만 후원금을 내고 있다. 봉사를 하면 자식들에게도 떳떳해진다. 내가 즐겁고 남이 행복하고 자식이 좋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봉사다.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사진: 강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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