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드림 3년째…남은 건 빚더미·암의 고통뿐
응 옌 반 린(35'베트남) 씨는 2010년 12월 한국에 온 뒤 몸이 좋지 않았지만 아파도 아프다 말 못하고 병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린 씨는 3년 동안 이곳저곳 떠돌아다닌 끝에 대구에 오게 됐고 자신이 '복막 중피종'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됐다.
린 씨의 통역을 맡은 대구이주민선교센터의 쩐 티 삐칸 씨는 "대구의료원에서 처음 린 씨와 마주쳤는데 그때는 만삭의 임신부처럼 배에 복수가 가득 차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6개월
린 씨는 베트남의 작은 어촌에 살다가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오기 전 베트남의 가족은 모두 가난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린 씨 위로 형이 네 명이 있었지만 일찍 죽거나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었다. 린 씨는 13년 전 결혼을 했지만 집이 없어 처가에 얹혀살고 있었다. 린 씨는 이대로 살다가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린 씨는 이때 한국행을 결심했다.
"주변에 한국에 가서 돈을 벌어 오는 사람들을 자주 봤어요. 배운 것도 없고 제대로 아는 기술도 없었어요. 바닷가에 살다 보니 배 타는 건 잘해 원양어선 선원 비자로 한국에 들어왔어요."
2010년 12월 한국에 도착한 린 씨는 곧바로 원양어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다. 한 번 나가면 여섯 달 정도 지나야 다시 돌아오는 힘들고 긴 여정이었다. 원양어선 일은 힘들지만 월급이 들어오면 가족에게 돈을 보낼 수 있다는 희망에 꾹 참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출항한 지 3개월쯤 지났을 때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맨 처음에는 체한 것처럼 아프다가 점점 고통이 심해졌다. 린 씨는 아프다며 육지에 도착하면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말했지만 한국인 선장은 "일 하지 않으려고 꾀병 부린다"며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린 씨는 어쩔 수 없이 아픔을 참고 일해야 했다. 배가 도착하자 린 씨는 여권도 원양어선 회사에 그대로 둔 채 무작정 뛰쳐나왔다. 6개월 동안 일한 임금 또한 전혀 받지 못했다.
◆생명의 도시, 대구
원양어선 회사에서 도망친 린 씨는 부산 근처의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육지에서의 생활도 배 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작정 뛰쳐나오면서 여권을 챙기지 못한 터라 그의 신분을 증명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게다가 계속되는 복통은 린 씨를 괴롭혔다. 며칠 일하다가도 복통 때문에 며칠 쉬는 일상이 반복됐다. 그런 탓에 한 달에 린 씨의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40만~50만원 안팎. 이마저도 병원비로 다 나갔다.
"한국에 와서 단 한 번도 베트남으로 돈을 보낸 적이 없어요. 원양어선에서 일한 보수도 못 받았고 공장에서도 제대로 일하는 날이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늘 오래 일하지 못하고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린 씨는 대구로 오기 전까지 먼저 한국에 와 있던 고국의 친구들이나 선배들에게 연락해 잠시 기거하며 공장 일이나 시간제 일들을 했다. 대구로 오기 전 마지막으로 일한 곳은 전북 김제시의 한 참기름공장이었다. 그곳에서 여섯 달 동안 일한 린 씨는 대구에 고향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린 씨는 친구에게 연락해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친구는 "도움을 얻을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대구로 오라고 했다.
지난 5월 대구에 온 린 씨는 고향 친구의 도움으로 대구의료원을 찾았다. 이때 린 씨의 배는 복수로 가득 차 있었다. 대구의료원에서 린 씨는 배에 고인 물을 빼고 나서 제대로 진단을 받을 수 있었다. 린 씨는 자신을 3년간 괴롭히던 복통의 원인이 '복막 중피종'이라는 암에 걸렸기 때문임을 알게 됐다.
"진단을 받고 집에 모든 사실을 알렸어요. 3년간 한국에서 내가 겪었던 일과 돈을 보낼 수 없었던 이유를 말했어요. 또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도 말했고요. 아내는 절망하더군요. 차라리 '죽고 싶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였어요. 가족에게 도움이 되려고 들어온 한국인데 오히려 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절 너무 힘들게 했습니다."
◆병원비, 소개비 등 남은 건 온통 빚뿐
린 씨는 대구의료원에서 대구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겨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 5차까지 계획된 항암 치료 중 지금까지 2차 항암치료를 받았다. 린 씨는 2차 항암치료 후 지난달 26일 퇴원했다가 배에 복수가 다시 차 이달 3일 다시 입원했다. 하지만 바로 항암치료에 들어가지 않고 지금은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린 씨가 항암치료를 계속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병원비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진료비 1천324만원은 국가에서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긴급의료지원금 1천196만원과 베트남에 있는 가족들이 빚을 내 한국으로 송금한 돈으로 겨우 해결했다. 지금까지 벌었던 얼마 안 되는 돈도 병원비로 다 써버렸다.
대구 오기 전에 일했던 참기름공장에서도 린 씨는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병원비 지원도 대구이주민선교센터에서 나서서 원양어선 회사로부터 여권을 돌려받은 덕분에 겨우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긴급의료지원금은 한 번밖에 받지 못하기 때문에 더는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병원비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 진 빚도 많다. 한국에 들어오려고 비자 발급과 직업소개소 등에 1천만원 이상의 돈을 썼다. 모두 은행 등에서 빌린 돈이다. 원양어선을 타고 몇 년간 열심히 일하면 빚도 갚고 가족들이 살 번듯한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린 씨의 꿈은 점점 물거품이 돼 사라져가고 있다.
린 씨는 요즘 들어 가족 생각을 많이 한다. 아프기 시작하면서 부쩍 더 많이 생각난다. 다행히 같은 병실에 입원한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이 음식을 나눠주는 등 챙겨줄 때도 있지만 가족들이 옆에 있는 모습이 부러울 때가 많다. 가족 생각이 날 때마다, 아픔과 외로움에 고통스러울 때마다 린 씨는 기도하면서 이겨낸다.
"이 병을 이겨낼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매일 기도하고 있어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고통을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아서요. 빨리 나아서 돈 많이 벌어 베트남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건강을 잃은 채 베트남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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