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풍에 말린 아귀와 콩나물·미나리…맵고도 감칠맛 나는 '버무림의 마술\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오동동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아니요 아니요 궂은비 내리는 낙수물소리/ 오동동 오동동 밤을 새우니/ 독수공방 타는 간장 오동동이냐.'
민요 '오동추야'(梧棟秋夜)의 고장이 바로 마산이다. 고급 요정 20여 곳이 모여 성업했다는 경남 마산시 오동동은 한때 기생만 100여 명이 거주했으며,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한량은 죄다 불러들일 정도로 유명세가 대단했다고 한다. 항구마을인 마산 오동동의 가을밤은 흥겨운 기생들의 장구 소리가 밤새도록 이어졌고, 술 취한 한량들은 '오동추야'를 초저녁부터 목놓아 불러댔다. 화끈한 경남 음식의 대표격인 마산아구찜은 마산 오동동을 누비던 주당들의 숙취해소를 위해 한 해장국집에서 탄생해 국민 외식 메뉴가 됐다.
◆요정 골목이 아구찜 골목으로 변신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마산 오동동은 요정 천국이었다. 기생들과 밤을 지새운 주당들은 아침이면 너나없이 숙취를 풀기 위해 해장국을 찾았다. 해장국집 중에서도 '초가할매집'은 아귀를 주재료로 콩나물, 미나리를 고춧가루에 버무려 탕과 찜으로 시원하게 끓여 줘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이 초가할매집이 바로 마산시 오동동 215번지에 자리한 마산아구찜의 원조 '오동동아구할매집'이다.
"할머니가 장사를 할 당시는 허름한 초가집이었습니더. 사립문에 울타리를 대충친 주막 같은 집이었지예." 아구찜을 시작했던 안소락선 할머니의 둘째 손자인 심재훈(43) 씨가 사진을 펴보이며 마산아구찜의 50년 역사를 설명했다. "지금까지 살아 계셨으면 104살이신 할머니와 외동아들이신 아버지(73)가 함께 아구찜 장사를 이곳에서 처음 시작하셨지요." 마산아구찜은 1대 안소락선 할머니가 창업해 며느리인 김삼연(67) 씨에게 넘겨 주면서 전국에 유명세를 떨치다가 이제는 손부인 한유선(45) 씨로 이어져 이제 3대에 걸친 가업이 됐다.
"오동동에는 요정집 대신 아구찜 가게가 빼곡히 들어서면서 1980년대 후반부터 아구찜 골목으로 바뀌었습니다." 마산아구찜의 전국화와 대중화는 안 할머니 며느리인 김 씨가 이뤄 냈다. 김 씨는 마산아구찜을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1980년대 초 정부가 주최한 문화마당 '국풍 81'에 동참하며 눈길을 모았다. 이후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분위기를 타면서 전국에 알려졌다. 김 씨는 1990년대 말까지 20여 년 동안 전국 축제장과 행사장을 누비며 마산아구찜을 홍보했다. 덕분에 마산아구찜은 국내 어디서든지 접할 수 있는 국민 외식메뉴로 자리 잡았다. 마산시와 함께 매년 5월 9일을 '아구데이'로 선정하기도 한 김 씨는 아구데이공동위원장으로 1996년 한국전통문화보존회로부터 마산아구찜 명인장에 선정되기도 했다.
◆'물텀벙'으로 천대받던 아귀가 효자 노릇
'초가할매집'과 '아구할매집'으로 특허청에 상표등록되어 있는 오동동아구할매집에 들어서면 여느 유명 맛집과 마찬가지로 방송신문 보도사례 사진들이 즐비하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 나눔대상, 고객만족 우수상 등 상장과 표창장도 벽면마다 수두룩하다. 뽀빠이 이상룡 씨는 '아무리 말해도 원조할매집, 올 때마다 새롭고 음식이 맛깔스러운 데다 친절해서 고향 그 자체입니다. 항상 이 모습 이대로 맛의 고향이 되소서'라고 사인해 평생 단골을 다짐해뒀다.
"옛날에는 먹지도 않고 거름으로 썼던 생선이지예. 어부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합니더." 심재훈 씨는 "아귀는 생긴 모양도 흉측하고 못생겨서 생선이 흔할 때는 어망에 걸려들면 어부들이 다시 물 속에 버렸다"고 했다. 이때 '텀벙' 소리가 난다고 해서 '물텀벙'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는 것. 성도 이름도 없이 천대받던 생선이 안소락선 할머니와 그의 며느리로 이어진 노력으로 이제는 항도 마산의 화끈한 경남 음식의 주재료가 된 것이다. 심 씨는 "지금은 모든 부위를 다 먹을 수 있는 생선이 됐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아구찜 요리는 우선 마른 아귀에 된장으로 밑간을 한다. 이어 물에 된장을 풀고 불린 마른 아귀와 콩나물을 같이 넣고 끓이다가 김이 오르면 다시 고춧가루, 다진마늘, 파, 미더덕을 넣고 찹쌀가루를 풀어 버무린다. 국자로 퍼내기 전에 미나리를 넣는다. 입안이 덥도록 맵게 버무린 아구찜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여 분. 주문만 받으면 뚝딱이다. 마른 아귀를 물에 불리는 정도와 삶는 정도가 씹을수록 감칠맛이 나는 비법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른 아귀에 양념이 흠뻑 배게 하면서 특유의 구수한 맛을 만든다.
오동동아구할매집은 아구찜뿐만 아니라 아귀해물볶음, 아구수육, 아구 불갈비 등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건아구찜은 1인당 1만5천원, 생아구찜은 2만3천~4만5천원이다. 아구꽃게해수찜(3만~5만원), 아구탕(2만5천~5만원), 아구불고기전골(3만~5만원), 미더덕찜(2만5천~4만5천원)에다, 아구수육(4만~8만원), 아구해물볶음(3만~5만원), 아구불갈비(4만~8만원) 등도 메뉴로 내놨다. 조미 아구포와 구운 아구포도 2만원에 판매한다. 건물 3층까지 손님이 꽉 들어찬다. 2, 3층 각각 180㎡. 손님이 밀릴 때면 지하에도 상을 차린다. 넓은 주차장과 함께 골목 건너편에는 240㎡ 규모의 별관도 마련돼 있다.
◆현대인에 딱 들어맞는 음식
"한 달에예? 아이고 그거 대중할 수도 없심더." 심재훈 씨는 "매달 아구를 얼마나 쓰는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쓴다"고 했다. 한 상자당 아귀 열 마리가 들어있는데 매월 1천 상자쯤 쓴다고.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아구 1마리로 3인분을 만든다. 아구는 여수, 거제, 포항, 부산에서 가져 온다. 아침마다 생아구를 사서 마산과 여수 현지에다 덕장을 차려 놓고 해풍에 말린다. 말린 아구는 영하 30℃의 냉동고에 보관하고 재료로 사용한다. 고용창출에도 적지 않게 기여한다. 종업원은 20여 명. 주말에는 6명의 가족이 전부 거들어야 한다.
아구찜 요리방식은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원조인 마산 지역의 경우 아귀를 말렸다가 불려 쓰고 아주 매운 양념으로 요리하는 반면 다른 지역에선 생아귀로 찜을 한다.
마산아구찜은 걸쭉하게 만들기 위한 갈분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맛이 더욱 깔끔하다. 처음 먹어보는 사람은 입에 맞지 않다는 이들도 더러 있다. 흑산도 홍어의 톡 쏘는 맛을 싫어하는 이가 있듯이 아구찜도 못 먹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아귀가 건조되면서 숙성된 맛은 독특하고 구수하다. 아구찜과 함께 나오는 살얼음이 낀 동치미도 일품이다. 쪽파를 잘게 썰어 넣어 넣은 상큼한 동치미는 화끈한 매운맛의 아구찜과 어우러져 입안에서 맛 궁합을 이룬다. 여수 돌산 갓김치도 아구찜에 어울리는 밑반찬이다. 특히 아귀의 뱃속에서 나온 생선으로 만든 아귀 속젓은 생다시마에 싸먹는데 별미 중의 별미이다. 마산아구찜은 한참 먹다가 보면 입 주변에 온통 양념고추장이 묻어 화끈거린다. "아구를 손질할 때 날카로운 이빨은 특히 주의해야 하고 꼼꼼하게 제거해야 합니다. 손님상에 올라가면 큰일 나지요." 아귀 예찬론자인 심 씨는 "아귀는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해 고소하고 쫄깃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낸다"며 "아귀는 억센 이빨과 뼈 이외에는 버릴 게 없고 아귀의 껍질엔 콜라겐이 많아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고 간은 비타민A가 풍부해 남성들에게 좋다"고 했다.
아구찜의 부재료인 콩나물은 섬유질과 비타민C가 많아 변비와 감기에 좋고, 아스파라긴산은 숙취해소에 좋다. 미나리는 영양가 높은 알칼리성 채소다.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의 함량이 높은 아귀와 콩나물, 미나리 등 세 가지 재료 이뤄내는 영양 궁합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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