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합격자 20명을 어쩌나?" 대구과학관의 고민

입력 2013-09-07 08:42:20

모두 합격취소 땐 소송 우려…선별 구제는 또 도덕성 논란

국립대구과학관이 채용 비리와 관련, 경찰이 밝힌 20명의 부정합격자에 대한 처리 문제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대구과학관은 6일 대구상공회의소에서 비공개로 임시이사회를 열어 채용 문제를 인사위원회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한 뒤 결정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대구과학관 관계자는 "경찰 수사결과가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에는 통보됐지만 아직 대구과학관에는 통보되지 않았다"며 "앞으로 수사결과를 정확하게 파악해 20명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부정 합격을 했는지 자세히 검토한 뒤 미래부와 협의해 인사위원회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대구과학관이 임시이사회를 통해 처리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방향을 잡을 것으로 전망됐으나 이날 임시이사회에서는 인사위원회에서 결정한다는 기본적 원칙만 의결했다. 이는 처리 문제가 그만큼 쉽지 않고 미래부와 대구과학관이 고심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달 29일 대구과학관 채용 비리를 수사한 대구 달성경찰서는 최종합격자 24명 중 20명을 부정합격자로 규정하고 이를 미래부에 통보했다. 쟁점은 '20명에 대해 모두 합격 취소를 하느냐'다. 합격 취소 범위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것.

경찰이 규정한 20명은 조금이라도 부정한 의도를 갖고 인사 청탁을 한 이들로 취소가 타당하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특히 시민단체들은 심사과정 전체가 부실'부정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선의의 응시자가 있다 해도 그 결과를 모두 무효로 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다시 채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20명 가운데 단순한 구두 청탁을 한 이들도 있어 면밀한 검토를 통한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법률 전문가들도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지역의 한 변호사는 "20명 부정합격자의 개별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가성 있는 금품이나 향응 제공이 아니더라도 우월적 지위에 있는 자가 부하직원 등에게 구두 청탁하는 것은 단순한 청탁을 뛰어넘는 행위"라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한 변호사는 수사기록을 자세히 보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금전이나 기타 대가성 청탁 등 중대한 범죄 혐의 없이 합격을 취소한다면 앞으로 소송을 하는 응시자들도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대구과학관은 이 문제를 고심할 수밖에 없다. 20명 가운데 경중을 따져 합격 취소 여부를 결정하면 국민 정서상 여론에 뭇매를 맞아 다시 한 번 기관의 도덕성에 흠집이 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20명 모두를 합격 취소할 경우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생겨 앞으로 소송이라는 후폭풍도 예상된다. 미래부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인사위원회가 관장과 직원 위주로 구성하지만 이번 건은 워낙 중대한 사안이라 일부 외부 전문가를 포함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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