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어답터의 세계] 얼리어답터, 그들은 왜?

입력 2013-09-05 16:02:24

예비구매자에 사용기 알려주는 '선구자의 쾌감'

'무언가 사고 싶은데 못 사서 잠을 잘 못 이룬다. 내일 제품을 받기로 되어 있는데 오늘 밤이 너무 길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한 제품을 클릭만 하다가 구입하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새로운 물건을 자주 사서 주위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포장 상자는 처분하지 않고 잘 둔다. 남들이 다 사는 걸 따라 사지 않는다. 내 물건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것을 즐긴다. 내 형편보다 항상 사고 싶은 물건이 비싼 경우가 많다.'

이런 증세가 몇 가지라도 있으면 당신은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다. 얼리어답터는 신제품을 가장 먼저 구입해 사용한 뒤 주위에 제품 정보를 알려주는 소비자를 지칭하는 용어다. '먼저'(early)와 '받아들이는 사람'(adopter)의 합성어로 미국의 사회학자 에버릿 로저스가 1957년 저서 '혁신의 보급'에서 처음 사용했다. 원래는 남들보다 빨리 신제품을 사서 써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소비자군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다 이러한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의미가 확대돼 제품이 출시될 때 남들보다 먼저 제품에 관한 정보를 접하고, 제품을 먼저 구입해 제품에 관한 평가를 내린 뒤 주변 사람들에게 제품의 특성을 알려주는 성향을 가진 일련의 소비자군을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나는 얼리어답터족

#1. 회사원 김영철(31) 씨는 올여름 그동안 가지고 있던 휴대폰과 디지털카메라, 캠코더 등을 모두 새것으로 바꿨다. 다가오는 10월 결혼하게 되면 용돈이 여의치 않을 것 같아 결혼 전에 신제품을 한꺼번에 구입한 것이다. 김 씨가 새로운 정보기기 등에 쏟는 한 달 평균 비용은 80여만원. 맘에 드는 신제품이 나오면 일단 사고 본다. 이 때문에 평소 여자친구로부터 "멀쩡한 제품이 있는데 왜 또 사느냐"는 핀잔을 적지 않게 들었다. 김 씨는 "결혼하게 되면 서서히 습관을 바꿔야겠지요. 새 제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현명한 소비를 위해 노력해보려 합니다."

#2. 전자기기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신승철(18) 군은 신제품이 나오면 꼭 손에 쥐고 만져봐야 직성이 풀린다. 신 군은 자신의 취미와 특기를 살려 친구들이 IT 제품을 구입할 때 충실한 조언자가 되어 주기도 한다. 신 군은 "용돈을 아껴서 새로운 제품을 사고, 바꾸는 경험을 통해 친구들에게 제품 구입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으니 좋다"고 말했다.

#3. 보험설계사 이민아(35) 씨는 딸 셋을 키우는 엄마다. 업무 특성상 하루 12시간 이상 집 밖에서 보내는 날이 잦다. 아이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하는 것이 항상 미안했던 이 씨는 IT 기기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언제 어디서나 아이들 얼굴을 보고 대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 그는 영상 통화가 가능한 CCTV인 카메라를 집 거실에 설치하고, 인터넷으로 접속해 아이들과 영상 대화를 나눈다.

◆얼리어답터의 항변

막 출시된 신제품이 비싼 건 당연한 일이다. 한두 달만 지나도 값이 뚝 떨어지지만 이걸 기다린다는 건 얼리어답터에겐 자존심 구기는 일이다. 남들보다 앞서 사용한다는 자부심도 갖고 신제품을 즐긴다는 만족감도 충족시키려면 구입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 스마트폰 시장을 지켜보는 얼리어답터들은 화가 난다. 통신사의 보조금 때문이다. 100만원을 넘는 신제품을 한 푼도 안 깎고 산 게 불과 몇 달 전인데 통신사가 보조금을 듬뿍 얹어 10만~20만원이면 살 수 있다고 홍보한다. 김상종(29'자영업) 씨는 "얼리어답터도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며 "술 담배는 물론 평소 좋아하던 여행까지 줄여가며 용돈을 확보해 제품을 구입한다"고 했다. 김 씨는 이어 신제품을 살 때 기존의 제품을 인터넷이나 중고시장에 판 돈에다 조금 얹어 구입하기 때문에 실지로 들어가는 구입비는 생각보다 적다고 말했다.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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