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동락] 목욕하는 날

입력 2013-09-05 14:09:16

왠지 여느 때보다 꾀죄죄해 보이는 몰골과 윤기 없이 엉키기 시작하는 털, 그리고 녀석들의 촉감이 평소만큼 부드럽고 매끄럽지만은 않다면, 그건 바로 고양이들의 목욕 시간이 찾아왔다는 알림이다. 물을 좋아하지 않는 대다수의 다른 고양이들처럼 우리집 고양이들 역시 몸에 물이 닿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더군다나 온몸이 축축해지는 목욕이라면 더욱더 질겁하는 녀석들이기에 씻겨야하는 나나, 나에게 씻기는 녀석들이나 목욕하는 시간동안 참 힘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꾀죄죄한 채로 방치할 순 없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찾아오는 체셔와 앨리샤의 목욕은 보통 이틀에 걸쳐서 진행된다. 단모종 고양이들은 깨끗한 물수건으로 닦아주기만 해도 1년에 한 번 정도의 목욕으로도 충분하지만 우리 고양이는 다르다. 둘 다 털이 한 아름인 장모종이라 씻기는 시간도 제법 걸릴 뿐만 아니라 한 마리가 목욕하고 있다는 낌새를 채면 나머지 한 마리는 겁에 질린 채 부리나케 도망가 버리기에 연달아 씻기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한 번에 두 마리를 다 씻기기엔 내 힘도 부친다. 고양이의 목욕은 사람처럼 한두 시간씩 걸리는 건 아니지만 겁에 질린 채 바둥거리며 울어대는 녀석들을 어르고 달래가며 씻기고 나면 나도 녀석들도 녹초가 되기 마련이다.

기억을 되돌려보면. 체셔는 처음 만난 날 바로 목욕을 했다. 사실 반려동물을 데려오면 새로운 집에 적응할 때까지 며칠을 기다린 후에 병원을 간다거나 목욕을 시키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그때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당시 체셔의 몸에선 그다지 좋지 않은 냄새가 풍기고 있었기에 바로 씻겨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반려동물과 함께해본 적이 전무했던 나를 대신해서 함께 체셔를 데리고 왔던 친구가 체셔의 목욕을 시켜주었다. 그 다음 목욕부터는 내가 직접 하긴 했지만, 할퀴거나 반항하지 않는 체셔 대신 되레 내가 너무 겁을 먹고 행여나 체셔의 눈이나 귀에 거품이나 물이 들어갈까 조심스러워 몸 부분을 제외하곤 거의 고양이 세수 수준의 물 칠이었다. 앨리샤의 경우엔 체셔와는 반대로 우리 집에 왔을 때 아픈 상태였기에 씻길 엄두도 내지 못했다. 집에 오고 두 달쯤 지나서야 첫 목욕을 했고, 다행히 앨리샤도 체셔와 마찬가지로 반항이라곤 할 줄 모르고 순했다.

수년간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드라이기'로 말리기만은 여전히 포기 상태다. 젖은 몸을 애처롭게 그루밍하는 녀석들을 보면 참 힘들어 보이지만, 한껏 예민해진 채 드라이기 소리만 들어도 몹시 싫어하기에 그저 커다란 수건으로 털을 탈탈 털고 몸을 닦아주는 수밖에 없다.

다른 반려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고양이를 목욕시킬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신속함'이라고들 한다.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한다. 목욕 시간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고양이들은 금세 '아웅'거리며 나가고 싶다고 나를 재촉하기 시작하고 덩달아 나까지 마음이 급해진다. 하지만 손이 느린 편인 내가 '깨끗함'과 동시에 '신속함'을 충족시키기란 쉽지만은 않기에 늘 끝엔 애써 어르고 달래가며 목욕을 마무리 하곤 한다.

이렇게 아옹다옹 목욕을 마치고 나면 나 역시 몹시 지치기에 늘 힘들다. 하지만 그 힘들었던 마음은 다음 날이면 사라진다. 목욕하고 난 이튿날의 고양이는 달콤한 향을 머금은 채 여느 때보다도 부드럽고 보송보송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소보다 훨씬 더 새하얗고 윤기가 흐르는 털을 뽐내며 전날 내게 화냈던 것은 새까맣게 잊은 채 내게 다가와 애교를 부린다. 이렇게 깨끗하고 폭신한 녀석들을 보면 '힘들지만 목욕시키길 역시 잘했어' 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게다가 조금은 우습기도 하지만 묘한 성취감과 뿌듯함이 마음속에 슬그머니 피어오르곤 하는 것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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