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도 없고 냄새도 없다. 그러니 더 치명적이다. 눈에 보이거나 냄새라도 나면 피하기라도 할 터인데 그렇지 않으니 피할 수도 없다. 0.5㎎의 소량으로도 사람을 숨지게 할 수 있다. 흔히 청산가리로 불리는 시안화물보다 독성이 500배 이상 강하다. 공기에 노출되면 사람의 호흡기나 피부, 눈 등 어느 기관을 통해서도 파고든다. 공기보다 비중이 커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일단 인체에 들어가면 중추신경계를 손상시켜 의식을 잃게 하고 곧이어 생명을 빼앗는다.
분자식 C4H10FO2P, 이름은 사린이다. 사린은 탄생부터가 불순했다. 1938년 나치 독일이 전쟁을 위해 개발했다. 개발 동기가 인명 대량 살상용이었다. 사린(Sarin)이란 이름은 개발자를 격려하기 위해 그들 이름(Schrader, Ambros, Rudiger, Van der Linde)의 초성에서 따왔다. 독일이 곳곳에 사린 생산 기지를 건설하던 중 패망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1988년 3월 이라크 후세인 정권이 북부 쿠르드 지역 할라브자에 사린 폭탄 공격을 가해 이의 잔혹성을 알렸다. 이 포격으로 인구 7만여 명의 할라브자 시민 중 5천 명이 숨졌다.
1993년 유엔은 화학무기 금지 협약을 맺었다. 이 협약에는 세계 162개국이 서명했다. 그러나 시리아나 북한 등에 이 협약은 여전히 의미 없는 일이다.
지난달 21일 시리아가 반군 지역 포격 당시 사용한 화학무기가 사린이었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시리아를 응징해야 한다는 미국과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중국과 러시아가 맞붙어 있다. 미국은 "이런 범죄행위는 전 세계에 대한 도전"이라며 "잘못된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고 시리아 포격 승인을 의회에 요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 또한 이례적으로 미국에 강경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이 같은 반응은 북한 때문이다. 북한은 2천500~5천t의 화학무기를 저장해 두고 있다. 휴전선 인근에 배치된 장사정포나 방사포탄도 상당수는 화학탄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시리아 사태를 방관하면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북한과 시리아는 이미 여러 차례 화학무기 관련 정보를 교류한 바 있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화생방 방독면을 구비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시리아에서의 화학무기 사용을 남의 일로 여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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