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세청 쇄신책, 신뢰 회복에 미흡하다

입력 2013-08-31 07:05:28

국세청이 29일 세무 비리를 차단하려고 쇄신책을 내놓았다. 국장급 이상 고위직은 100대 기업 임직원 등과 식사'골프를 금지하고 고위공직자 감찰반과 세무조사감독위원회를 신설하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다. 다만, 사회 통념상 인정되는 동창회 참석은 허용하기로 했다. CJ그룹 세무조사 무마 비리로 전직 국세청장과 차장이 구속되고 현직 서울지방국세청장이 사퇴, 국세청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자 서둘러 마련한 자구책이다.

국세청은 1966년 개청 이후 19명의 청장 중 8명이 검찰 수사를 받았거나 구속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세청장에 대한 수사가 가능해졌다는 점을 따지면 15명 중 절반이 넘는다. 최근에는 서울국세청의 한 세무조사팀 전체가 뇌물을 받은 것이 적발됐는데 팀원들이 받은 돈을 똑같이 나누고 팀장에게는 더 준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의 공공기관 청렴도 조사에서 국세청은 검찰, 경찰과 함께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국세청이 과거부터 복마전 같은 비리가 끊이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쇄신책은 크게 미흡하다. 예전에 비리가 발생할 때마다 내놓았던 대책 수준에 그치고 있다. 100대 기업 임직원 등과 만남을 금지한다고 하지만 이 지침이 지켜질지 알 수 없으며 중소기업 경영자들과는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니 큰 허점을 안고 있다. 동창 간 만남을 허용하는 지침도 기업의 국세청 로비가 학연이나 지연 등을 통해 이뤄지는 현실에서 큰 효과를 거둘 수 없다.

국세청의 비리는 세간에 상'하급자가 뇌물을 나누는 '뇌물 담합', 동료가 걸려들면 남은 현직이 그의 가족까지 챙겨준다는 이야기까지 나돌 정도로 고질적이다. 항간에 지하경제 양성화에 빗대 지하세정부터 양성화해야 한다는 냉소마저 나오고 있으니 조세 정의를 내세우며 세금을 더 내라고 하기도 민망스러운 상황이다. 이런 판에 국세청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고액 현금거래자료를 열람할 수 있게 돼 권한이 더 커졌다.

국세청의 자정 대책이 한계를 안고 있는 만큼 외부로부터의 개혁이 절실하다. 국회가 CJ 사건을 계기로 국세청장 2년 임기제, 국세청장 후보자 추천위원회 구성 등을 담은 '국세청법' 제정을 서둘러야 하며 비리 직원에 대한 연금 지급 정지 등 처벌의 강도를 높이는 대책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 국세청 핵심 보직에 특정지역 출신들을 기용하는 정치색도 걷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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