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이 3450을 눌렀다. 시중에 나도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다. 이야기인즉슨 이렇다. 정부가 세제 개편안을 만들면서 세 부담 증가 기준으로 3450만 원을 제시했다. 화들짝 놀란 것은 증세 기준이 된 3천'4천'5천만 원대 근로소득자가 아닌 7천'8천만 원대 봉급생활자였다. 3450만 원 소득자부터 세금을 더 내게 되면 자신들은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러나 정작 증세 시발점이 된 3천'4천'5천만 원대 월급쟁이들은 무덤덤했다. 그러자 졸지에 세금 덤터기를 쓰게 된 7080은 3450을 자극했다. 고소득자들은 꿈쩍도 않는데 너희가 왜 더 내느냐. 예상대로 3450이 들고 일어났다. 세수 증대를 위해 애꿎게 중산층만 잡는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7080은 집단 수에서 3450에 상대가 안 된다. 3450 소득자는 350만 명에 달하는 반면 7080 소득자는 57만 명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3450이 들고 일어나니 정부는 하루 만에 백기를 들었다. 손도 안 대고 코를 푼 7080은 뒤에서 슬며시 미소 짓고 있다는 줄거리다.
이야기는 이어진다. 이번 세금 전쟁에서 3450은 패자다. 3450이 당초 정부안에 모르쇠했더라면, 7080의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7080은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했다. 억대 연봉자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원래 정부안에 따르면 3450 소득자 350만 명이 추가 부담해야 하는 세금은 3천224억 원이었다. 7080은 57만 명이 3천334억 원을 더 내야 한다. 1억 원 이상 소득자 35만 9천 명이 부담하는 세금은 훌쩍 뛰어 8천412억 원에 이른다.
이리 되면 당연 근로소득자만 봉이냐는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을 것이다. 부자들에게도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 저소득 근로자들이 세금을 더 내겠다는데 부자들이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외면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증세 논란에서 한 발짝 비켜나고 세수 확보에도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우스개는 그저 우스개일 뿐이다. 3450이 정부의 세제 개편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해도 떠도는 시나리오대로 흘러갔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관심이 쏠린 것은 이에 지금의 사회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복지 요구는 갈수록 드세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이르면 대부분 나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중'저소득층은 나보다 돈 많이 벌고 잘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내가 왜' 하고, 고소득층은 이미 낼 만큼 내고 있는데 '나만 왜' 한다.
이는 "내가 낸 만큼 나중에 돌려받을 수 있다"는 복지에 대한 믿음이 없고 "세금이 투명하게 잘 쓰이고 있는가"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내는 만큼 복지 혜택이 돌아오고 또 잘 쓰인다면 속상하지 않고 세금을 더 내겠는데 그렇지 않으니 불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감사원 발표를 근거로 "지난 3년간 사회복지 통합 관리망을 통해서 확인된 복지 누수액만 6천600억 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세금이 그만큼 허투루 쓰였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0~2세 자녀를 둔 여성의 취업률(33.2%)이 자녀의 보육 시설 이용률(48.7%)을 밑도는 유일한 OECD 국가다. 취업해 있지도 않으면서 아이만 보육 시설에 맡기고 있는 여성이 그만큼 많다. 연예인과 전문직 고소득자 8만 1천800여 명은 4천197억 원의 국민연금을 안 내고 버텨도 명단도 공개하지 못한다. 2011년 고의 부도로 인한 부가가치세 체납액은 6조 7천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결국 못 거둔 세금이 3조 4천억 원이다. 이러니 개인사업자 사이에선 '부가세는 다 낼 필요가 없는 세금'이란 말이 유행이 됐다. 역대 국세청장들이 줄줄이 세금 줄여 주겠다면서 뇌물을 먹고 붙잡혀간다. 세금을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국가 보조금을 눈먼 돈처럼 여기고 허위로 타낸 어린이집도 줄을 잇는다. 내가 낸 세금이 이처럼 공평하게 집행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선뜻 세금을 더 내겠다는 국민은 없다.
정부는 '내가 왜' '나만 왜' 더 세금을 내야 하는가라고 묻는 국민들에게 '내가 왜' '나만 왜' 세금을 더 내야 하는지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냥 세금 더 내라고 툭 던질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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