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교수의 한·일 이야기] 일본의 수상한 '자주성'

입력 2013-08-10 08:00:00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는 자민당 간사장이었던 2003년 "한글은 일본 사람이 가르쳐 주었다"는 발언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그 아소가 7월 29일 개헌을 하는 데 독일의 나치 수법을 배우면 어떨까라는 발언을 했다. 미국의 유태인 인권단체가 항의하자 아소는 발언을 철회하고 사죄했다. 비슷한 예는 과거에도 있다. 1995년 일본의 어느 대형 출판사가 발행하는 월간지에 "나치의 가스실은 없었다"는 논문이 실렸다. 그러자 유태인 단체가 항의를 하고 월간지의 광고주들을 압박했다. 출판사는 사죄하고 월간지를 폐간했다. 사원들에게 유태인 문제에 관한 연수도 실시했다. 그런데 같은 출판사의 같은 월간지에는 "난징(南京) 대학살은 없었다"는 기사가 반복적으로 실렸다. 그러나 그 출판사는 난징 대학살을 부정한 것에 대해 철회나 사죄를 하지 않았다.

위 두 가지의 예에는 공통점이 있다. 나치의 범죄 피해자들 비판에는 사과를 하는 반응을 보였으나, 일본이 저지른 범죄 피해자들의 비판은 외면하였다는 점이다. 또 잘 알려진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의 망언이 있다. 그는 전쟁 시기 군대에는 위안부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했다.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미군에게는 유흥업소를 더 많이 활용할 것을 직접 권고도 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자 하시모토는 미국에 사죄했다. 그러나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과 오키나와 사람들에게는 발언의 철회나 사죄를 하지 않았다. 침략과 식민지 지배 피해자들의 비판에 대해 반성은커녕 반발조차 하는데, 미국의 비판에 대해서는 납작 엎드렸다. 역사 문제에 대한 이와 같은 일본의 행동 사례는 적지 않다. 두 가지만 더 살펴보자.

야스쿠니신사에는 유취관(遊就館) 이라는 부속 기념관이 있다. 거기에는 명치 시기 이래 일본의 전쟁을 미화하는 전시물이나 해설문이 진열되어 있다. 2006년 미국 의원들이 그곳을 시찰해 보니, 태평양전쟁의 원인을 '루스벨트 대통령의 음모'라고 해설하고 있었다. 미국 의원 시찰단은 항의와 함께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자 야스쿠니신사 측은 이 해설문을 일부 삭제, 수정하였다. 그러나 야스쿠니신사는 중국이나 한반도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지금까지도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2007년 군 위안부에는 강제가 없었다고 국회에서 답변했다. 한국의 반발은 물론이고 미국 의회에도 사죄와 보상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상정되었다. 그 직후 미국을 방문한 아베는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해 "깊이 반성했다"고 사죄했다. 부시는 "아베 총리의 사죄를 받아들인다"고 했다. 한국 외무부는 "아베 총리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 분들에게 사죄하는 것이 낫다"고 힐난했다.

일본 외교를 설명하는 모델로 '외압 반응 국가론'이 있다. 일본의 외교 정책 결정에 외국의 압력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외국이란 미국을 가리키며, '외압'(外壓)의 영어 표현도 일본어 발음 그대로 '가이아츠'(gaiatsu)로 표기한다. 미국의 요구에 대해서는 잘 반응하는 데 대해 침략과 식민지 지배 피해국의 요구는 거절한다. 2000년대 일본의 보수 정치와 주요 매스컴들의 행동 양식에도 이 같은 측면이 두드러진다. '외압'에는 일본 국내의 특정한 이익집단이 외국을 끌어들이는 '국내산 외압'도 있다. 평화헌법 개헌, 집단적 자위권의 확대 용인, 오키나와 미군 기지 강요 등은 미국의 외압인 동시에 일본 국내의 보수 우파 및 매파들의 이익에 기초한 것이다

아베 정권의 침략 부정 발언, 각료들의 야스쿠니 참배, 위안부 모욕 발언 등에 대해서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국제인권기구, 미국 행정부도 계속 비판과 시정 권고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이 같은 '외압'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자주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외압 반응론'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이러한 수상한 '자주성'에는 일본 정치'사회의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한일 두 나라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다자 간 지역 협력과도 관련되는 수수께끼이다. 계속 주시해 보자.

히로시마시립대학교 교수

*김영호 교수는 1961년 도쿄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3세로 메이지대학에서 국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대 한국의 사회운동' '일한 관계와 한국의 대일 행동' '재일코리안사전'(분담 집필) 등의 저서가 있다. 그는 독자들에게 현대 한국과 일본 간의 관계, 일본의 정치'사회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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