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논쟁] 한 지붕 두 가족, 이상화 문학제

입력 2013-08-09 07:56:47

"정통성·원류는 중구가 명백 기념사업회가 행사 중심에 서야"

대구시 중구 계산동에 위치한 이상화 고택 전경.
대구시 중구 계산동에 위치한 이상화 고택 전경.

대구시민들은 매년 오월이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민족시인 이상화 관련 문학제가 두 번이나 연이어 열리는 것에 대해 의아해한다. 이상화 문학제가 엊그제 끝났는데, 이내 또 상화 문학제가 열리는 것이 아닌가? 한 도시에서 '왜 이상화 한 사람을 두고 '한 지붕 두 살림'을 살고 있는가'에 대해 대부분 시민들은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서로 다른 주최 측에서 다른 기간을 고집해 빚어진 결과물이다. 대구의 문화예술인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양쪽으로 갈려 있다. 더 이상 두고 볼 일이 아니다. 대구시에서도 통합을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쉽지 않다. 지난해에는 이상화 기념사업회 윤장근 전 회장과 수성문화원 윤종현 원장이 간담회를 열고, 상호 협조하기로 했지만 그 이후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다. 올해도 통합 또는 협조를 위한 움직임은 활발하다. 좋은 결말을 기대하며, 이슈의 장을 마련했다.

◆"정통성·원류는 중구가 명백 기념사업회가 행사 중심에 서야"…이상화 기념사업회, 박동준 회장

"이상화 문학제는 전국으로, 세계로 나가야 합니다. 큰 틀에서 통합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올해 2월에 만장일치로 이상화 기념사업회 수장인 된 박동준 회장은 이상화 관련 문학제가 서로 다른 기간에 서로 다른 단체의 주최로 엇갈려 열리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박 회장은 "이상화 시인에 관한 정통성과 원류는 중구에 있음이 명백하고, 기념사업회가 관련 행사의 중심에 서야 한다"며 "기념사업회는 이상화 관련 사업을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행사로 키워나갈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대의에 따라, 내년도 문학제에 대한 준비는 큰 틀에서 준비하고 있다. 전남 강진의 김영랑 시인을 기리는 영랑기념사업회(회장 김승식)와 손을 잡았다. 내년 4월에는 대구 이상화 기념사업회가 강진을 방문하고, 5월에는 영랑기념사업회가 대구를 방문하기로 했다. 각종 행사도 상호 협력을 약속했다.

지난달 대구시 역시 큰 틀의 통합을 위해 이상화 기념사업회 측에 협조를 당부했으며, 이에 이상화 기념사업회 측은 전체회의를 통해 일단은 시의 전체적인 조율 하에 내년도 이상화 관련 문학제를 두 주최 측이 같은 기간에 열자는데는 합의했다.

박 회장은 "이사들 간의 많은 논의가 있었는데, 일단은 당장 두 주최 측을 단일 주최로 통합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생각했다"며 "수성문화원 측도 이상화 시인을 기리기 위해 하는 좋은 취지가 있는 만큼, 서로 존중하며 같은 기간에 축제 프로그램을 더 다채롭게 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 홍성주 문화예술과장은 "이상화 기념사업회 측에 협조를 당부했고, 큰 틀에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내년에는 적어도 같은 기간에 축제를 열 수 있을 것"이라며 "시에서는 두 주최 측의 의견을 잘 모아서, 축제 단일주최를 위해서는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빼앗긴 들은 수성들판 대등한 관계서 통합 수용 용의"…수성문화원 윤종현 원장

"'빼앗긴 들'이 수성 들판이라는 얘기는 황당한 얘기가 아닙니다. 당시로 비춰 볼 때, 이상화 시인은 대구 수성들을 보며, 시상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이 수성 들판이 지금은 주택가로 바뀌어 있지만 나라 사랑 정신을 일깨우는 새 터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대구 수성문화원 윤종현 원장은 수성문화원에서 주최하고 있는 상화문학제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 실제 수성문화원은 수성구의 문화 정체성을 찾고 '삶의 향기가 피어나는 문화, 품격 있는 수성구'를 슬로건으로 2005년에 개원해, 이듬해인 2006년 주요사업으로 제1회 상화문학제를 시작했으며 올해까지 수성못 일원에서 8회째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수성문화원 관계자는 "이상화 기념사업회와 수성문화원의 문학제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며 "수성문화원은 2006년 3월에 이상화 시인의 시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수성못에 건립했으며, 수성못을 중심으로 매년 3일간 다채로운 축제를 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성문화원 측도 큰 틀에서의 통합을 원하고 있다. 윤 원장은 "이상화 기념사업회 측이 흡수 내지 사업 포기 등 백기 투항을 요구하지 않고, 대등한 관계에서 이상화 관련 문학제를 통합하자고 제안한다면 대구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윤 원장은 "수성문화원에서는 이상화 시인의 민족정신과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매년 상화문학제를 열고 있다"며 "부족한 예산으로 부실한 중복행사를 치르는 것보다 두 단체가 하나가 되어, 내실있는 범시민 행사로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상화 선생을 현창하는 일에 새롭게 맡아야 할 역할이 있다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상화 기념사업회(이사)와 수성문화원(조직위원) 측에 모두 관여하고 있는 문무학 대구예총 회장은 "이상화 관련 문학제가 두 주최 측으로 갈라지면서 지역의 문화예술인들 사이에서도 이해관계가 엇갈린 것이 현실"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큰 틀에서 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대구시 차원에서 벌여야 한다. 수성문화원 측이 대승적 차원에서 협조해준다면, 내년부터는 통합의 형식을 갖춘 이상화 문학제가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낙관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대구에 이상화 관련 흔적들

대구에는 민족 저항시인 이상화 관련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먼저 중구 계산동 2가 84번지 소재(이상화기념사업회) 상화고택이 있으며, 달성공원 내에는 전국 최초 시비(1948년)인 상화시비가 세워져 있다. 이뿐만 아니다. 달서구 두류공원 인물동산 내에는 상화동상(좌상 및 기념비)이 있으며, 달성군 화원읍에는 이상정 및 이상화 묘소가 있다. 달서구 달비골~화원간 대로의 명칭은 상화로다. 더불어 수성구 수성못둑에도 상화시비가 세워져 있다.

이상화 시인의 대표시에 등장하는 '빼앗긴 들'을 둘러싼 논란도 흥미로운 대목. 수성문화원 측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빼앗긴 들'은 수성들(지금의 들안길 먹자골목)로 주장하고 있으며, 이상화 기념사업회 측은 특정 지명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 조국, 민족 등 상징적 표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권성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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