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초원에서 오삼불고기 점심…'풀밭 위의 식사' 떠올라
화면 중앙에 네 사람이 보인다. 두 쌍의 남녀 중 세 사람은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다. 한 여인만 조금 떨어진 물가에서 뒷물을 하고 있는지 반나(半裸)의 상태로 반쯤 구부린 엉거주춤한 자세로 엎드려 있다. 숲 속 풀밭 위에 앉아 있는 여인은 이미 몸 씻기를 마쳤는지 직각으로 구부린 오른쪽 다리에 오른팔을 괴고 발가벗은 채 앉아 있다. 여느 창녀처럼 당돌한 기미도 없고 그렇다고 여염집 여자와 같은 단정미도 없다. 그냥 그대로의 자세다.
앉아 있는 여인 옆의 남자는 구레나룻 수염에 검은 슈트를 걸친 정장 차림이다. 오른쪽 남자 역시 같은 차림새지만 머리엔 터번 같은 모자를 쓰고 왼손에 스틱을 든 채로 오른팔을 뻗어 뭔가를 구시렁거리고 있다. 그의 표정은 자못 심각한 것처럼 보이지만 앞에 앉아 있는 두 남녀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가 무엇에 대해 지껄이고 있는지는 별도로 녹음된 자막이 없어 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 그림은 빛과 어둠, 여자와 남자, 나체와 정장, 정물과 풍경 등 모든 것이 정 반대 개념으로 절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인상파의 거장 마네의 그림을 보고 이렇게 감정을 앞세워 약간은 에로틱하게 재해석하는 것은 불경에 가까운 아주 위험한 상상이란 걸 나는 안다. 그렇지만 나의 소아병적인 심미안의 한계가 여기까지밖에 미치지 않으니 실로 안타까울 뿐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당시 프랑스 사회도 이 그림을 보고 발칵 뒤집어졌다고 한다.
1863년 이 그림은 프랑스의 살롱전에 출품했다가 떨어진 후 낙선자 전시회에 '목욕'(La bain)이란 명제를 달고 다시 나타났다. 그러자 위선의 탈을 뒤집어쓰고 사는 것이 바른 생활이라고 믿고 있던 프랑스 사회는 거짓의 옷과 겉치레 의상을 입지 않은 사람들을 불편해하고 심지어 증오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내뱉듯이 이 그림도 외설로 매도당했다.
평론가들은 마네의 이 그림을 두고 자칫 오만으로 치달을 수 있는 편견을 내려놓으라고 주문한다. 어떻게 보면 그림 속의 벗은 두 여인의 얼굴에서나, 옷을 입고 있는 두 남자의 시선에서 욕망의 그림자가 별로 어른거리지 않는다. 평론가들은 '편견을 내려놓으면 자세는 더욱 편안해지고 옷을 입었든 안 입었든 상관없는 무애자재의 경지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어쨌든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는 가장 세속적인 것을 세속적이 아닌 것처럼 눙치고 있다. 마네 이전의 화가들은 여신(女神)을 그릴 때만 누드를 그릴 수 있었다. 당시 시대 상황은 여인의 누드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마네는 여신이 아닌 여인을 그것도 발가벗은 상태로 그린 것이다. 벗은 여인과 입은 남정네의 눈빛에서 세속의 욕망을 걷어내 보려고 안간힘을 쓴 흔적이 뚜렷하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여인은 여인일 뿐 여신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말이다.
몽골의 초원을 달리다 점심을 먹는 장소가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자리와 흡사했다. 전나무 숲 속 그늘에 자리를 펴고 시원한 맥주를 곁들인 오삼불고기로 점심상을 차렸다. 동행인 중 어느 누가 이렇게 말했다. "야, 이건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풍경을 빼다 박았네요." "정말 그렇군요," 아까부터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나의 생각을 맞장구로 응답했다. "그러면 두 사람 정도는 벗어야 되는데." 조금 떨어져 앉아 있는 여성 그룹은 우리의 대화를 눈치 채지 못하고 단정하게 앉아 있다.
식사 후에는 바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단원으로 활약했던 아가씨가 장구를 들고 나와 설장구 춤을 추었다. 이어 국악 경연대회에서 큰 상을 휩쓸었던 가야금 주자가 가야금 산조를 연주했다.
이날 풀밭 위의 작은 음악회는 내 생애 중에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호사가 극에 달하는 깜짝 이벤트였다. 초원의 빛, 꽃의 영광, 바람의 은총이란 찬사를 모두 다 바쳐도 조금도 버겁지 않을 그런 풍경이었다. 옷을 벗었든 입었든 풀밭 위의 식사는 정말 멋지다. 얼쑤, 조오타.
구활<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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