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시골에 가면 어머님께서는 늘 맛있는 횟감을 마련하고 우리를 반가이 맞아 주셨다. 음복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사과밭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네댓 살 된 우리 맏이가 과수원에 뒹군 녹슨 무딘 낫으로 친척 누나에게 양손으로 나무막대를 잡으라 하고 내리친 것이 손등을 치고 만 것이었다. 결국 병원에서 여러 바늘을 꿰매고 형님네가 돌아왔다. 놀라움과 미안함에 무어라 할 말을 잃었다.
시골에서 볼 때마다 생글생글 잘 웃던 조카는 그때의 상처를 잊게 해줬다. 그런데 그 조카가 급성간염에 걸렸다고 했다. 한창 생기발랄해야 할 아가씨가 축 늘어져 병실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기가 찼다. "괜찮아! 모든 것이 잘될 거야"하고 돌아서려는데 손등에 꿰맨 흔적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이건 뭐야?" 물었더니 조카는 "어릴 때 과수원에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병원을 나오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청천벽력 같은 일인가? 어제 사랑니를 뽑고 와 아침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약만 먹고 회사에 간 아들인데, 어서 가서 이 사태를 막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병원 도착 즉시 수술실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기실에 몇몇 사람이 보였다. 나는 소리쳤다. "자기 자식 살리려고 내 허락도 없이 함부로 수술을 해!" 그러자 어디선가 남편이 나타나 나를 잡았다.
담당 주치의 뒤에 젊은 의사가 나를 보고 말했다. "아드님께서 아주 싱싱한 간을 줘서 수술을 잘할 수 있었다"고.
2년의 세월이 흘렀다. 변함없이 기다려준 며느리와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다. 수술을 잘 마치고 건강을 회복한 조카가 결혼식에 왔다. 아주 생기발랄하게….
속 좁기가 아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생명의 소중함을 그 어디다 비기랴.
곽선희(대구 동구 효목1동)
◆'우리 가족 이야기' 코너에 '나의 결혼이야기'도 함께 싣고자 합니다.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사랑스럽거나 힘들었던 에피소드, 결혼 과정과 결혼 후의 재미난 사연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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