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대구문화예술계의 품격 찾기

입력 2013-08-01 11:06:20

얼마 전, 지인(知人)과 문화계 인사 채용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며칠 뒤, 그는 한 번 만나 본 적도 없는 사람이 그 자리에 내정됐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만약 그 사람이 임명된다면 아무리 공정한 심사를 했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소문대로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래서 그런 소문은 유력 후보자를 죽이는 전형적인 흑색선전이니 무시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어차피 그 자리에 앉을 만한 인사는 몇 사람 되지 않고, 이쪽저쪽에서 특정한 사람을 거명하며 내정설을 퍼뜨린다면 누구를 뽑아도 그 '사전 내정'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정설의 첫 시작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위력은 컸다. 큰 무리 없이 그 자리를 맡을 만한 인사가 대구에도 몇몇 있었지만, 외부 인사가 왔다. 내정설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이런 사례는 최근 몇 년 동안 대구문화재단 대표나 대구오페라하우스 관장,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 공모에 이르기까지 많았다. 사전 내정설에다 온갖 험담이 덧붙여져 외부 인사의 눈에는 대구문화예술계가 늘 말 많고, 자리다툼을 벌이는 집단으로 비쳤다.

요즘, 또다시 이런 이야기가 떠돈다. 앞으로 다가올 몇몇 자리의 공모 때문이다. 대구시의 문화예술계 인사 공모직은 그리 많지 않은데 이번에는 여러 사정이 겹쳐 뽑는 시기가 비슷하다. 9월쯤 정식 출범할 대구오페라재단의 상임이사와 예술감독직, 11월 개관하는 대구시민회관 콘서트홀 관장직, 그리고 대구문화재단 대표직도 있다. 물론 대구문화재단 대표직은 정관 개정과 이사회의 정상화 문제가 남아 있고, 전례로 보아 공모보다는 초빙할 여지가 많다.

이들 자리를 하나씩 뜯어놓고 보면 역할이 전혀 다르지만, 이곳저곳에서 거명되는 인사는 과거 여러 공모 때와 별반 차이가 없다. 자리를 맡을 만한 사람이 적어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걱정하는 소리도 많다. 과거 공모 때마다 되풀이한 상황으로 본다면, 또다시 대구문화예술계의 치부(恥部)가 드러날 것이 뻔해서다.

그동안 여러 자리를 두고 벌인 대구문화예술계의 이전투구 결과는 초라하다. 공모 무효라는 극약 처방으로 타 지역 인사가 맡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지역 인사가 맡아도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현재까지의 결과만 두고 본다면, 잘해보자고 시작한 개방직 공모제가 오히려 대구문화예술계의 위상과 품격을 떨어뜨렸다.

사실, 직책 임명권과 예산 배정이 모두 자치단체의 권한이다 보니 시와 시의회 눈치 보기는 어쩔 수가 없다. 문제는 정도가 심하고 개인 영달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리에 앉을 때부터 연임이나 임기 뒤 옮길 만한 다른 자리까지 계산하니 소신 행정은 찾기가 어렵다. 대구문화예술 발전이라는 큰 그림보다는 실적용의 보여주기 행사를 치르는 데 급급했다. 이는 그 자리를 노리는 인사도 마찬가지다. 문화예술이 지금처럼 자치단체에 종속된 적이 없었다는 한탄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자치단체 입장에서 본다면 개방형 공모직은 권한은 갖고, 책임은 지지 않는 최상의 형태다. 과거 자치단체가 전권을 쥐고 있을 때는 여러 단체를 중심으로 대구문화예술 발전이라는 공동 목표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가 쉬웠다. 그러나 개방형 직제가 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문화예술계의 동료, 선배라는 동류(同類)의식이 있는데다, 불합리한 일을 고치는 데 앞장서야 할 리더급 인사들의 눈치 보기도 심하다. 괜히 나섰다가 불이익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니 대구문화예술계를 밥그릇 싸움이나 하는 집단으로 욕을 해도 무관심하거나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구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이 틀은 깨야 한다. 틀 깨기는 자존심 찾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앞으로 있을 여러 공모에서 어떤 자리를 두고 누가 경쟁하든, 페어플레이를 해야 한다. '누가 누구와 친하고, 그 자리는 누구를 내정했고…' 하는 식의 뒷담화로 제 눈을 찌르는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누가 그 자리에 앉든, 서로 긴밀하게 협조해야 한다. 대구문화예술계의 지원이라는 든든한 '빽'이 있어야 자리보전이 아니라 소신 있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풍토를 정착시켜야 '문화예술계와 거리가 있는 외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고, 대구문화예술계 스스로 품격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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