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북한 경어체 통지문

입력 2013-07-16 10:59:35

소련의 외교는 철저히 비타협적이었다. 1930년대 몰로토프 외무장관 이래 소련 외교관들은 유엔 서방 측의 제안에 툭하면 '니에트'(Nyet'영어의 No)를 남발했다. 오죽했으면 소련 외교를 '니에트 외교'라고 했을까.

스탈린은 니에트 외교의 진수를 잘 보여줬다. 그는 미국이 원자폭탄으로 일본을 끝장내는 것을 보면서 공포를 느꼈지만 전쟁 자체만 아니면 원자폭탄이 거의 무용지물이란 것을 잘 알았다. 또한 미국이 원자폭탄을 보유하고 있지만 소련과 전면전을 치르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소련과 전쟁을 하려는 의사도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움츠러들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가 협상에서 늘 '니에트'를 견지한 이유다.

이렇게 해서 힘을 받은 니에트 외교는 1957년부터 1985년까지 소련 외무장관을 지낸 안드레이 그로미코에 와서 절정에 이른다. 그는 1950년대 유엔 안보리에서 무려 26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렇게 해서 그가 얻은 별명이 '미스터 니에트' 또는 '옹고집 북극곰'이었다. 그러나 니에트 외교는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면서 '다(Da'영어의 Yes) 외교'로 바뀐다. 군축 협상에서 고르바초프가 이전 소련 지도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전향적 자세를 보이자 서방 외교관들은 고르바초프를 '미스터 다', 그의 외교 스타일을 '다 외교'라고 불렀다.

이 같은 방향 전환은 소련을 '수소폭탄을 보유한 개발도상국가'라고 한 헬무트 슈미트 독일 총리의 지적처럼 소련 내부의 각종 모순에 따른 자발적 측면도 있지만, 평화공존이지만 또한 냉전의 영속을 뜻하기도 하는 '데탕트'는 끝장내야 한다는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단호한 대소 외교가 이끌어낸 결과이기도 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11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습니다' '입니다' 등 경어체로 된 통지문을 우리 정부에 보냈다고 한다. 주로 '∼한다' '∼함'이란 표현이 주를 이뤘던 과거와는 상당히 달라진 자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남북협상에서 박근혜정부가 과거처럼 적당히 타협하고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는 관행을 버리고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데서 단초의 하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북한의 달라진 어투가 향후 북한의 실질적인 자세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라는 적극적인 해석도 나올 법하다. 꿈보다 해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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