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을 텃밭으로 만들자] <2>주민들 소통의 장으로

입력 2013-07-13 08:00:00

농작물 함께 키우니…삭막한 아파트 속에도 이웃간 情 '쑥쑥'

텃밭 하나가 아파트 주민들을 이웃사촌으로 만들고 있다. 정우맨션 주민들이 아파트 내 공동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를 나누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텃밭 하나가 아파트 주민들을 이웃사촌으로 만들고 있다. 정우맨션 주민들이 아파트 내 공동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를 나누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대구 남구 대명동 정우맨션 내 공동텃밭에는 가지, 고추, 상추 등이 한 아름 자라고 있다. 올해 4월 남구청으로부터 상자텃밭 50개를 지원받아 공터였던 어린이놀이터를 텃밭으로 꾸민 것.

상자텃밭 외에 별도로 40㎡에 텃밭도 조성했다. 텃밭이 생긴 뒤 이 아파트에는 조그마한 변화가 생겼다. 바로 옆에 살면서도 몰랐던 주민들이 텃밭에서 인사를 하고 같이 잡초를 뽑는가 하면 다른 텃밭에도 물을 주면서 서로 알아가고 있다. 여기저기서 "상추 좀 갖고 가세요" "고추 좀 따가세요"라며 나눠주는 풍경도 일상사다. 텃밭 분양을 받지 못한 주민들도 텃밭을 찾아 구경한다.

입주자대표회의 권영세 회장은 "아무리 주민들끼리 화합하자고 강조해도 협조가 잘 안 됐는데 상자텃밭 하나가 아파트 분위기를 확 바꾸어놓았다"고 말했다.

도시농업이 도시를 바꾸고 있다. 텃밭 덕분에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몰랐던 이웃주민이 서로 알게 되고 도시인과 농민이 서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또한 식량문제에 있어 토종 종자를 보존하고 도시 환경을 쾌적하게 하는 등 무한한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조그마한 텃밭이 '도시 녹색혁명'의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이웃 간 문이 열린다

아파트 텃밭은 아파트 공동체 형성에서 가장 효과적인 매개체로 여겨지고 있다. 텃밭을 통해 아파트 주민들이 '이웃사촌'이 되는 경우가 적잖다. 이를 가장 잘 실천하는 곳 가운데 하나가 서울 송파구다. 송파구청은 아파트 커뮤니티 활성화의 하나로 아파트 옥상텃밭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래미안 아파트는 지난해 3월부터 옥상텃밭을 운영하고 있다. 1×2m의 상자텃밭 35개를 관리동 건물 옥상에 마련해 주민들이 키우게끔 하고 있다.

상자 1개에 5가구가 참여해 다양한 잎채소나 열매채소를 키운다. 좁은 공간에 채소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레 주민들끼리 대화도 하면서 친해진다. 관리사무소 측은 "밤에 끼리끼리 모여 삼겹살을 구워먹기도 하고 단지 내 어린이집이나 노인정에 채소를 나눠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파트 텃밭의 효과 때문에 요즘 건설사들은 아예 단지 설계 때부터 텃밭을 조성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계룡건설이 지난해 분양한 서울 노은 계룡리슈빌Ⅲ는 단지 내 1천859㎡의 대규모 텃밭을 조성해 가구당 3.24㎡씩 공급한다. 또 일성건설의 의정부 일성트루엘에는 단지 내 가족 단위 텃밭으로 이용 가능한 '패밀리팜'을 조성했다. 이 밖에 여러 건설사가 텃밭을 조성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아파트가 공동으로 살면서도 공동으로 살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장소였지만 텃밭 등을 통해 생활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했다.

텃밭은 껄끄러운 가족 간의 정도 깊게 한다. 올해 3월부터 팔현마을 공영텃밭을 분양받아 이용하고 있는 김희정(32'대구 수성구 지산동) 씨는 매주 시부모와 텃밭을 찾는다. 김 씨는 텃밭이 시부모와 친해지는 좋은 매개체가 됐다고 했다. 김 씨는 "과거에는 시부모님 댁을 찾아 밥 먹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왠지 부담스러웠다"면서 "하지만 텃밭에 오면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같이 채소를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상생하는 도시인'농민

비영리 민간단체인 '강북마을공동체'는 칠곡군 동명면에서 직거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매장에서는 근교 농산물을 전시하고 인근 주민에게 판매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강북마을공동체는 매장 외에도 다양한 도시민-농촌 상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3천여㎡의 공동텃밭을 운영하고 매장에 텃밭 코너를 마련해 도시민들이 직접 수확한 채소를 저렴한 가격에 팔도록 하고 있다. 또한 농민들로 구성된 원예치유농업연구회를 통해 주민들에게 교육을 진행하고, 아파트 부녀회를 대상으로 농촌체험 및 공동구매 등도 하고 있다. 김기수 대표는 "도시민이 텃밭을 통해 지역 농산물을 이해하고 애용하도록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도시농업은 도시인이 농민을 이해하고 로컬푸드를 애용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농촌진흥청이 지난 2010년 전국의 도시 거주 2천 가구를 대상으로 '도시농업 실태 및 요구조사'를 실시한 결과 텃밭이나 발코니, 옥상 등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도시민의 국내산 농산물 구매 비율(67.6%)이 도시농업을 하지 않는 도시민의 구매 비율(59.9%)보다 높았다. 국내산 친환경농산물 구매 비율도 도시 농민이 15%로, 비도시 농민 비율(12.7%)보다 높게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도시농업이 우리 농산물에 대해 알게 되고, 이는 곧 먹거리 안전으로 이어져 우리 농산물을 애용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풀이했다. 대구경북연구원 석태문 박사는 "아이들이 쌀과 채소를 먹고 있지만 이름도 모르고 어떻게 재배되는지도 모른다. 농사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먹거리에 대해 몰라 패스트푸드가 성행하고 수입 농산물에 대한 거부감도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석 박사는 "도시농업은 자칫 도시농부와 농촌농부 사이의 경쟁 관계를 가져온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상생하는 관계를 만들고 도시농업을 경험한 도시민들이 귀농을 하게 된다"고 했다.

◆'식량 주권'은 숨겨진 가치

도시농업은 생각지 못한 의외의 가치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국내 종묘회사들은 1997년 IMF 이후 외국 자본에 거의 흡수됐다. 몬산토코리아나 센젠타종묘, 코레곤 등이 국내 종묘시장을 잠식하고 있으며 대형 국내 종묘회사로는 농우바이오 한 곳이 남아 있다. 이는 결국 다국적 종묘회사들이 우리 식탁을 지배하고 있는 꼴이다. 대구사회연구소 전충훈 전략사회국장은 "다국적 회사들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자신들의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 씨앗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오직 수익을 위해 종자 특허를 내세우며 재사용이 불가능한 '터미네이터 씨앗' 등도 시판하고 있다.

수익 창출이 목적인 농촌에서도 토종 종자 보존을 기대하기 어렵다. 농촌은 단위 면적당 생산성이 높아야 하고 그러려면 생산량이 많은 품종을 심는다. 수많은 품종이 있지만 심는 것은 고작 2, 3종에 불과한 것.

토종 종자는 앞으로 식량 주권이나 먹거리 안전과도 직결되는 만큼 상당히 중요한 문제지만 현실은 토종 종자가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도시농업은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도시농업은 수익이 목적이 아니므로 다양한 품종을 심을 수 있어 토종 종자를 충분히 보존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민간 토종종자모임인 '씨드림'에서 토종 씨앗 나누기를 하고 있고 대구녹색소비자연대에서 2, 3년 전부터 토종 씨앗 나누기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활성화되고 있지 않다. 전문가들은 민간 운동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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