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LA주립박물관 조선왕실 어보는 도난품

입력 2013-07-11 10:28:51

2010년 이후부터 미국 LA로 건너간 조선왕실의 어보(御寶)의 행방을 추적 중이다. 현재 LA주립박물관(LACMA)에 전시 중인 이 어보는 높이 6.45㎝, 가로, 세로 각 10.1㎝로 거북 모양의 손잡이가 있으며, 조선 11대 임금인 중종의 왕비 문정왕후의 존호인 '성열대왕대비지보'(聖烈大王大妃之寶)란 명문이 새겨져 있다. 1547년 아들인 명종(재위 1545~1567)이 "경복궁 근정전 섬돌 위에 나가 '성열인명대왕대비'라는 존호를 올리고 덕을 칭송하는 옥책문과 악장을 올렸다"는 실록의 기록으로 미루어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서울 종묘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었던 조선왕실의 어보가 어떤 이유로 LA까지 흘러가게 된 것일까?

이 어보의 존재가 밝혀진 것은 2010년 여름이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미국 내 한국문화재의 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LA주립박물관의 문정왕후 어보 소장 사실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정부는 6'25전쟁을 전후한 시점에 유출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확실한 입장은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문화재청은 조사 결과 "수년 전 한 개인 수장가한테서 어보를 구입했다는 말을 들었으나, 상세한 경위는 알 수 없었다. 재단 기금으로 구입한 합법적인 소장품이어서 반환은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안다"고 소극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즈음 나는 직접 미국 메릴랜드의 국가기록원을 방문, '아델리아 홀 레코드'라고 불리는 문서 전문을 입수하게 되었다. 미국 국무부 관련 '아델리아 홀'여사가 작성한 이 문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흘러들어온 불법 문화재를 조사하고, 원산국으로 문화재를 반환한 경위를 작성한 문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기에 6'25전쟁 당시 한국에서 문화재를 약탈한 미군 범죄에 대한 조사 보고서와 반환 경위에 대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었다.

아델리아 홀 레코드의 마이크로필름 4:774에는 '한국의 도장'(Korean official seals)이란 파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열어 보니 1956년 5월 21일 아델리아 홀이 당시 양유찬 주미 한국 대사와 전화로 나눈 통화내용이 있었다. 47개의 조선왕실 어보가 미군에 도난당했다고, 미국 정부에 분실 사실을 신고하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한국의 보물이 사라졌다'는 제목의 1953년 11월 17일 볼티모어 선이란 신문기사도 수록되어 있었다. 이 기사에 의하면, 양유찬 주미대사는 47개 조선왕실의 도장이 미군에 의해 도난당했고, 행방을 아는 사람은 주미대사관으로 신고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귀국 후 나는 LA주립박물관 소장 문정왕후 어보를 되찾기 위해 수차례 LA주립박물관에 반환요청서를 보냈다. 문정왕후 어보는 6'25전쟁 중 미군이 약탈한 문화재인 만큼, 원산국으로 돌려주기 바란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LA주립박물관은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희망없는 막연한 싸움이었다.

2013년 1월 다시 미국에 갔다. 거기서 교포들과 문정왕후 어보를 되찾기 위한 모임을 결성했고, 교포들과 함께 LA주립박물관에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문화재를 돌려 달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국내에서도 안민석 의원(민주당)이 국회에 'LA소장 문정왕후 어보 반환 촉구 결의안'을 제출하는 등 정치권의 호응도 있었고, KBS가 6'25전쟁 당시 미군이 약탈한 문화재들에 주목, '미국에서 찾은 국보(國寶)'란 다큐를 방영하기도 했다.

결국, LA주립박물관도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2013년 6월 LA주립박물관 측은 반환 요청에 대해 "아직 한국정부로부터 문정왕후 어보가 도난품이란 어떤 지적도 없었다. 만약 문정왕후 어보가 도난품이 확실하다면 관련된 증거를 제출해 달라"고 답신했다. 그리고 우리 측의 면담 요청을 수락. 반환협상의 테이블이 마련되었다.

지극한 정성은 하늘도 움직인다고 했던가! 27일로 다가온 한국전쟁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비록 민간차원이지만 그 당시 약탈당한 문화재 반환 협상이 시작된다. 문정왕후 어보는 다시 우리 민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가슴이 뛴다. 혼이 담긴 계란은 바위를 깬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혜문/스님·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