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청도 복호산·지룡산

입력 2013-07-04 14:07:18

능선 모습 웅크린 호랑이 닮아 견훤 탄생 지렁이 전설도 서려

청도 복호산(伏虎山·681m)과 지룡산(地龍山·658.8m)은 영남 알프스 운문산의 명찰 운문사에서 북동쪽 2㎞ 남짓한 곳에 위치해 있다. 운문사의 부속암자인 청신암과 내원암, 북대암, 사리암이 거의 지척에 담장을 맞대고 철옹성이라 여겨질 만큼 험한 바위능선 오름길 끝에 산정이 있다.

등산로 주변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산재하고 바위 전망대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 현재 복호산 정상석이 서 있는 지점은 예전에 지룡산 신선봉으로 불렸던 곳이며 안부를 지나 15분쯤 뒤에 만나는 봉우리가 지룡산 정상으로 표기되어 있다. 지룡산의 유래는 지룡산 산행 입구에 위치해 있는 염창(신원리)이란 부락 이름에 근거한다.

아주 먼 옛날 이곳에 한양에서 낙향한 노부부가 과년한 외동딸과 함께 살았는데 노부부의 유일한 꿈은 과년한 딸의 좋은 혼처감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딸이 시들시들 병을 앓기 시작했다. 심히 걱정을 하던 노부부는 좋은 약이란 약은 다 구해 정성껏 달여 먹였지만 좀처럼 효험이 없었다.

그러다 한 달 두 달 세월이 흐르고 마침내 딸이 사경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때야 노부부는 밤이면 밤마다 흔적 없이 나타나는 한 사내에 의해 딸이 시달린 것을 알게 된다. 이 사연을 알게 된 노부부가 명주실 한 꾸러미를 딸에게 주며 오늘 밤 그 남자가 나타나면 그 남자의 허리에 이 실을 꼭 묶어 두라고 신신당부한다.

이윽고 날이 밝자 노부부는 딸의 방에서 나온 명주실을 따라가 보니 복호산 중턱 바위굴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굴 속에는 큰 지렁이 한 마리가 실 끝에 묶여 발버둥 치면서 독을 품어내고 있었는데 더 이상 접근을 못하게 된 노부부는 황급히 돌아와 마을 사람들과 지렁이 퇴치 방법을 모색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지렁이는 소금을 제일 싫어해 소금을 모아 지렁이 굴 근처에 뿌리기로 했으나 소금이 비싸고 양이 워낙 많이 필요해 이를 보충하기가 태부족이었다.

생각 끝에 주민들이 울산 쪽의 바닷물을 길어다가 이곳에서 소금을 굽기 시작했다. 곳곳에 제염소를 차리고 많은 나무장작을 구해 소금을 구워 모아 소금창고(염창)에 쌓아두고 계속 지렁이 굴 둘레에 소금을 흩어왔다. 그로 인해 지렁이는 마침내 죽었고 노부부의 외동딸은 회생했다고 한다. 그때 태어난 아기가 견훤이라는 설이 아직까지 전해지며 지금도 그때의 소금창고인 염창(鹽倉)이 있었다 하여 동네 이름이 염창이다.

등산의 시작점은 신원마을 삼거리. 삼거리 우측은 운문사 들어가는 길이고 좌측이 삼계리와 운문령으로 이어지는 길인데 좌측 도로 우측에 밀성 손씨 묘로 오르는 등산로가 보인다. 묘를 지나면서 숲 속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확연하지만 복호산 정상까지는 된비알 길의 연속이다. 그러나 오름길 도중에 간간이 바위 조망대가 만들어져 뒤돌아보는 풍경이 그만이다.

갈림길이 나타나면 좌측 오름길을 따른다. 암봉을 거쳐 복호산으로 가는 길로서 눈 내린 겨울이나 노약자가 아니라면 권할 만하다. 로프가 설치된 두 군데의 직벽 구간을 반드시 거치게 되는데 설치된 로프가 조금 낡아 있어 주의를 요한다. 리더는 보조 자일을 준비하는 게 좋다. 밧줄지대를 통과하면 발아래로 운문사 주차장과 호거대가 보인다. 우측이 낭떠러지인 절벽구간에 서면 아름다운 바위 풍광이 덤으로 펼쳐져 올라온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운문사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삼거리를 지나면 복호산 정상이다. 이곳에서 좌측 길이 상운산으로 통하는 능선코스이고 우측이 운문사의 암자인 북대암으로 내려서는 코스다. 산이 가져다주는 매력에 비하면 복호산과 지룡산의 정상석은 다소 초라하다. 거기다 사면이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조망이 별로다. 그렇지만 명품 전망대가 곳곳에 숨겨져 있어 그 부분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작은 성터인 지룡산성터(호거산성)를 통과하면 영남알프스 전체 산군을 가늠할 수 있는 전망대다. 전면으로 억산을 비롯해 범봉, 운문산, 가지산, 상운산, 고헌산, 쌍두봉, 문복산, 옹강산 등이 시계반대 방향으로 펼쳐지고 내원암과 운문사가 발아래로 내려다보인다. 내원암으로 내려가는 삼거리를 지나 829m봉 오름길은 또 한 번 힘을 쓰게 만든다. 829m봉 못미처에 바위전망대가 있다. 그곳에서 뒤돌아보면 지금까지 걸어온 봉우리와 주능선이 마치 거대한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829m봉은 학육봉 또는 삼계1봉으로 불린다. 807m봉은 작은 돌탑이 있는 봉우리로 삼계2봉이라 한다. 우측 등산로는 배넘이재로 해서 쌍두봉이나 사리암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이 암봉이라 불리는 최고의 바위 전망대로 내려가는 길이다. 거대한 절벽으로 형성된 암봉에서 바라보는 옹강산과 문복산, 고헌산과 쌍두봉 상운산 등 영남 알프스 주변의 사면팔방 조망이 대미를 장식한다.

암봉에서 나선폭포까지 내려가는 등산로는 다소 가파르다. 직벽의 높이가 40m가 넘는 나선폭포는 겨울철에 빙벽장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곳으로 수량이 많으면 그야말로 장관이다. 나선폭포에서 20분 정도면 천문사, 절 입구의 삼계계곡은 사시사철 많은 사람들이 찾는 맑은 계곡이다. 삼계리에는 매점과 식당이 있어 하산주 장소로도 그만이다.

신원삼거리에서 출발해 복호산, 지룡산을 거쳐 나선폭포로 내려서는 데 약 10㎞의 등산거리에 4, 5시간 가까이 소요된다. 여름철이 아니라면 쌍두봉까지 연계하는 장거리 등산도 가능하나 14.5㎞의 거리에 6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등산로 곳곳에 전망대가 산재하고 우측으로 내려서면 언제든 운문사로 하산할 수 있다. 운문사로 하산할 수 있는 등산로가 다섯 군데나 된다.

예전의 지룡산 신선대가 왜 복호산이라 불리게 되었는지 정확한 근거와 문헌은 없다. 그러나 복호산에서 지룡산 829m봉으로 능선을 이어서 타다 보면 곳곳의 바위 전망대에서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멀리서 보는 억산이 산정을 향해 오르는 호랑이를 연상시킨다면 829m봉 못미처의 전망대와 하산 길 암봉에서 바라보는 복호산과 지룡산의 능선이 마치 웅크린 거대한 호랑이의 모습 같다는 것이다.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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