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활의 고향의 맛] 뜰채 숭어잡이

입력 2013-07-04 14:26:05

숭어, 진도대교 주변 횟집 가면 2만원이면 네 사람 실컷 먹어

숭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회도 그렇고 찌개도 덤덤하다. 음식을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은 머릿속에 입력된 기억 때문이다. 그래서 '음식 맛의 절반은 추억이다'란 말이 생겨난지도 모른다. 음식은 먹을 때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맛의 유무가 결정된다.

일 년 중 숭어의 눈에 백태가 끼어 흐릿해지는 시기가 있다. 그때 숭어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바닷가 방파제 주변에 떠다닌다. 운만 좋으면 손으로 건질 수도 있고 족대 하나만 있어도 몇 마리는 쉽게 낚아챌 수가 있다. 동해 어느 포구에서 눈먼 숭어를 잡아 즉석에서 회를 쳤는데 선입견 때문인지 맛이 신통치 않았다. 숭어를 멀리하게 된 동기가 이렇게 단순하다.

요즘 포항, 통영, 여수, 묵호 심지어 주문진 어시장에 가도 자연산 생선은 귀하신 몸이 된 지 오래고 양식 생선들이 판을 치고 있다. 숭어는 더러 양식이 있긴 하나 그래도 자연산이 많은 편이어서 뒤늦게 빛을 보고 있다.

게다가 여러 방송매체가 '육소장망어법'으로 숭어를 잡는 가덕도 대항마을의 풍경을 HD화면으로 보여 주는 바람에 하급 어종인 숭어가 갑자기 스타가 된 듯 우쭐대고 있다. 우리의 재래 방식으로 숭어를 잡는 현장에는 주말마다 관광객들이 넘쳐난다니 그것 또한 듣기 좋은 소리 중의 하나다.

대구에서 비교적 가까운 동해의 월포리 앞바다에서도 옛날부터 정치망에 걸려든 고기를 건져 올리는 방식은 숭어잡이와 비슷했다. 동력선 한 척에 서너 척의 무동력선이 달라붙어 방어, 쥐치 등 계절을 바꿔가며 몰려드는 고기를 무더기로 잡아냈다. 젊은 시절, 이른 아침에 '물 보러'(고기를 건지러) 가는 어장 배에 동승하여 뱃전에서 싱싱한 고등어 회를 포식한 적도 있다.

어쩌다 텔레비전에서 장망어법으로 숭어를 잡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좀이 쑤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설레발을 친다. 또 얼마 전에는 한 술 더 떠 진도대교 밑 울돌목에서 대형 뜰채로 숭어를 낚아채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내가 저 짓을 하고 있어야 될 텐데' 하는 마음이 느닷없이 솟구쳐 그야말로 환장할 지경이 다 된 적도 있었다.

이날은 '울돌목 숭어 대첩'이란 기치를 내걸고 진도 달인 김상근 씨와 해남 달인 허성원 씨가 '삼세판' 방식으로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결과는 해남 달인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화면이 다른 프로그램으로 바뀌어도 펄펄 뛰는 숭어란 놈들이 망막에서 사라지지 않아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울돌목 갯가에 숭어 떼가 몰려오는 시기는 4월부터 7월 중순까지다. 바로 이때가 뻐꾸기 울고 보리가 익어가는 무렵이어서 흔히 '보리 숭어'라 부른다. 남해에서 겨울을 난 숭어들이 난류를 따라 서해 쪽으로 이동할 때 이곳 울돌목 해협을 지나게 된다.

울돌목은 조류가 워낙 거세 해협 복판으론 고기들조차 거슬러 오를 수가 없는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울돌목 해협에 굵은 철사 밧줄을 물속에 가라앉혀 양안에 묶어 두었다. 농촌 아이들이 길섶의 긴 풀을 묶어 행인들의 발을 거두는 놀이를 원용한 것이다.

조선의 유인 배가 도망치듯 해협 복판으로 달아나면 왜적 선단은 그걸 잡으려고 밀고 들어오게 된다. 이때 둑에서 기다리던 군사들이 밧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면 물살의 미는 힘과 밧줄의 멈추는 힘이 맞부딪쳐 배는 물속으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명량해전이 대첩으로 끝난 것도 장군의 지략이 출중했기 때문이다.

숭어 떼도 마찬가지다. 물살 센 복판으로 진군하지 못하고 가장자리로 몰리다 보니 이번에는 뜰채와 한 판 승부를 벌이지 않으면 안 된다. 다행히 살아남으면 무리와 함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바다 서해로 돌아갈 수 있지만 붙들리면 몸은 산산이 부서진 누드가 되어 접시 위에 누워야 한다.

뜰채 숭어잡이는 이 고장에 살면서 나처럼 천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놀이 삼아 30여 년 전부터 즐겨왔다. 요즘은 울돌목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울사모(회장'김재철)란 모임을 만들어 10여 명의 회원이 번갈아 가며 숭어를 뜰채로 잡아 올린다.

하루 평균 200마리는 거뜬하게 잡는다니 수입 또한 짭짤한 편이다. 이렇게 잡은 숭어는 진도대교 주변의 숭어 횟집에서 한 접시에 2만원에 팔리고 있다. 양도 푸짐해서 네 사람이 실컷 먹을 정도다. 울사모에서 자원봉사자를 뽑는다면 '저요, 저요' 하고 금방이라도 달려가고 싶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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