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률의 줌인] 만화 원작 '슈퍼 히어로' 전성시대

입력 2013-06-27 08:00:00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점점 만화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만화 같은 주인공이 만화 같은 적과 대결해 만화처럼 승리하는 이야기가 할리우드 영화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보면 어느 순간, 만화와 영화의 경계가 정말로 허물어지는 순간을 목도하게 되는데,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이 아니라 CG로 만들어낸 영상이 스크린을 지배하면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강해졌다. 더 이상 실사 영화와 CG로 만든 애니메이션의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는 점점 더 만화처럼 되어간다.

할리우드 영화가 만화처럼 되어가는 가장 큰 이유는 할리우드가 만화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요즘 할리우드의 가장 뜨거운 소재는 만화이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아이언맨3'와 '맨 오브 스틸'이 개봉했고, '울버린'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작년에는 '다크나이트 라이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어벤저스' 등이 개봉했는데, 대부분의 영화가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

할리우드는 왜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있는 것일까?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인기 만화라는 검증된 원작이 있다는 것이다. 인기 만화라는 말은 이미 수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라는 말이다. 게다가 만화는 영화의 콘티와 거의 흡사하다. 촬영을 할 때 원작과 비슷하게 하면 되기 때문에 화면 구도에서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할리우드가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자주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다른 나라보다 월등하게 앞선 테크놀로지 때문일 것이다. 만화처럼 황당한 이야기도 그 어떤 이야기보다 사실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에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지금 할리우드가 선호하는 만화는 두 회사의 것이다.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헐크', '토르', '울버린', '켑틴 아메리카' 등을 소유한 마블코믹스와,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그린 랜턴' 등을 소유한 DC코믹스가 그들이다. 이 만화들을 원작을 해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은 연작을 내놓고 있다.

제목에서 이미 알 수 있는 것처럼 대부분의 이야기가 슈퍼 히어로에 대한 내용이다. 말 그대로 인간이 아닌, 신적인 힘을 지닌 존재들이 엄청난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세상과 인류를 위협하는 악의 세력으로부터 지구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 쉽게 서사 구조가 보이는 이런 영화들이 왜 흥행을 하고 있는 것일까? 거기에는 영웅을 필요로 하는 우리 사회의 욕구가 전제되어 있을 것이다. 영웅 신화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어려움을 대리만족으로라도 풀고 싶은 것이다. 더 나아가, 말도 안 되는 내용을 지독히 사실적으로 재현해내는 기술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망도 있을 것이다. 그 거대한 스펙터클을 통해 판타지의 세상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요즘 슈퍼 히어로를 보면 저마다 고민에 빠져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아이언맨3'에서 토니 스타크는 불면으로 지새면서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맨 오브 스틸'의 클락도 끊임없이 떠돌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한다. '다크 나이트'의 브루스 웨인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크도 부모를 추적하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단순한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인간의 고뇌를 지닌 슈퍼 히어로로 거듭나려는 몸부림처럼 보인다. 인간과 함께 하는 영웅의 모습을 통해 관객인 인간에게 호소하는 전략인 것이다.

두 회사의 영화가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미묘한 차이점이 있는데, 마블 코믹스의 원작으로 영화화한 경우 대부분 감독의 지명도보다는 만화의 스케일과 분위기를 영화로 잘 살리는 것에 치중한다면, DC코믹스의 원작으로 영화화한 경우 감독이 독특한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것에 치중한다. '다크나이트' 시리즈를 만들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할리우드와 만화의 밀월은 앞으로도 꾸준히 진행될 것이다. 마블코믹스는 마블엔터테인먼트로 재편되었다가 2009년 월트 디즈니에 인수되었다. 이 말은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 게임, 출판 등으로 다각화시킨다는 것이다. 원 소스 멀티 유스(OSMU, one source multi use)를 처음부터 바라보고 원작에서 영화, 테마파크까지 만든다는 말이다. DC코믹스도 같은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모회사인 영화사 워너브라더스는 마블코믹스에 비해 다양하지 않은 DC코믹스의 캐릭터를 세계 관객들에게 알리기 위해 DC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이처럼 할리우드 영화 산업은 점점 거대해지고 있는데, 그 시작점에 만화가 있다. 만화를 시작으로 캐릭터, 출판, 영화, 케이블, 게임, 이 모든 것들을 포괄하는 라이선싱의 거대한 그림을 완성시켰다. 할리우드는 철저하게 산업화되고 있다.

강성률 _ 영화평론가,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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