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다문화사회의 두 얼굴

입력 2013-06-19 11:12:57

동명 소설(김여령 작)의 영화 '완득이'(2011년 10월 개봉) 얘기부터 하자. '완득이'의 주인공 도완득은 밤무대와 5일장을 다니며 공연과 장사를 하는 척추 장애인 아버지를 둔 열일곱 살 고교생이다. 완득이는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났다. 공부는 못하지만 싸움 하나만은 전교 1등이다. 이 불량 학생은 오지랖 넓은 담임선생 '똥주'의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보살핌(혹은 간섭)을 받는다. 완득이는 오랜 방황 끝에 꿈을 갖게 된다. 그런 가운데 완득이는 자신을 낳자마자 집을 나간 엄마를 만난다. 그런데, 엄마는 필리핀 사람이다. 완득이는 혼란과 충격에 빠진다. 물론 나중엔 부모가 헤어진 사연과 아버지와 엄마가 진정으로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엄마를 받아들인다. 완득이는 왜 어렵게 만난 엄마를 처음에 거부했을까? 아마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보다 엄마의 피부색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잔잔한 감동을 준 이 영화는 530만 관객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필리핀 엄마 역을 했던 이자스민 씨는 지난해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첫 '다문화 국회의원'이 됐다. 하지만 이 씨의 국회 입성에 대해 일부 언론과 네티즌들은 근거 없는 모함과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다음 주제는 얼마 전 발생한 '리틀 싸이' 악성 댓글 사건이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본 사람들은 싸이 못지않게 넘치는 끼를 발산한 '리틀 싸이'에게 애정을 보냈다. 리틀 싸이(본명 황민우)는 인기를 타고 스타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이 아이가 한국인 아빠와 베트남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놓고 욕설을 섞어가며 비난하는 '악플'이 잇따랐다. 한쪽에선 '리틀 싸이'의 재능에 열광하면서 다른 쪽에선 여덟 살 소년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일삼는 부끄러운 일이 벌어지는 곳이 지금 우리 사회이다. 어처구니없는 생각 하나 해본다. '만약 완득이와 리틀 싸이의 엄마가 미국이나 프랑스 사람이었다면?'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민주국가의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가치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우리는 아직도 '반만년 단일민족'이란 근거 없는 순혈주의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닐까? 남 얘기 할 것도 없다. 나부터 반성한다. 우리 조상들이 일본 땅에서 '조센징'으로 당한 슬픈 역사와, 이역만리의 750만 교민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여기서 이래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외국인과 이주민 수는 국내 전체 인구의 2.9%(139만 명, 2011년 12월 기준)에 이른다. 대한민국도 통계적으로는 다문화사회에 들어섰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다문화사회에 필요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5년 동안 관련 사업에 2조 원 정도를 투입할 예정이다.

이 시점에서 그간의 다문화 정책을 한 번 되돌아 보자. 우리의 다문화 정책이 온정주의적이거나 동화주의적인 '외국인 정책'은 아닐까? 결혼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우리의 세시풍속을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은 한국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사업들은 '다문화 정책'이라기보다 외국 이주민들을 한국식 단일 문화로 끌어들이려는 '동화 정책'이란 인상이 짙다. 우리는 신문이나 TV에서 이주여성들에게 한복을 입혀 큰절을 시키고, 장이나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치는 장면을 종종 본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우리들 가운데 한복을 입는 사람이 얼마나 되고, 장을 담그는 집은 얼마나 된다고….' 물론 이주여성들에게 우리 문화를 소개하려는 순수한 취지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도 일상에서 잘 지키지 못하는 관습을 이주여성들에게 가르치려는 프로그램은 민족적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겠다.

다문화 정책은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해 서로 다른 문화가 같은 사회에서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다문화 정책은 외국 이주민들이 종교'문화'생활은 물론 경제활동에서 차별과 불편을 덜 느끼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또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다문화 이해 교육을 강화하는 사업이 포함돼야 한다. 외국 이주민들이 지역 공동체와 잘 어울리고, 그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 미래를 위한 중요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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