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조로 푼 한시] 大樹(대수) / 백운거사 이규보

입력 2013-06-13 14:34:44

큰 나무 아래에서 보내는 즐거움만은

사람은 자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자라면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출세하려면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만남의 원리를 애써 강조하는 인사들의 말을 자주 듣는다.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보면 맞는 말이다. 부부 간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상사와의 만남 등 헤아릴 수 없다.

나라는 큰 나무임이 분명하겠다. 큰 나무가 주는 여러 가지 혜택을 현실 입장에서 언급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읊은 시 한 수를 아래와 같이 번안해 본다.

큰 나무 더운 날씨 쉬기에 편해 좋고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 피해서 좋구나

그늘이 양산 같으니 주는 혜택 또한 많다.

好是炎天憩 宜於急雨遮

호시염천게 의어급우차

淸陰一傘許 爲亦云多

청음일산허 위황역운다

'큰 나무 아래의 즐거움'(大樹)으로 번역되는 오언절구다. 작가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1168∼1241)로 고려 중기의 문신이자 문인이다. 1189년(명종 19년) 사마시(司馬試), 이듬해 문과에 급제했다. 높은 요직은 아닐지라도 탄탄한 벼슬길을 걸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더운 날씨에 쉬기 좋고 / 소낙비 피하기도 좋아라 / 시원한 그늘 양산만 하니 / 주는 혜택이 또한 많구나'라는 시상이다.

백운거사는 우리 민족에 대해 커다란 자부심을 가졌으며, 외적의 침입에 대해서는 단호한 항거정신을 가졌다. 국란의 와중에 고통을 겪는 농민들의 삶에도 주목,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그의 문학은 자유분방하고 웅장한 것이 특징이다. 자기 삶의 경험에 입각해서 현실을 인식하고 시대적, 민족적인 문제의식과 만나야만 바람직한 문학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시인의 국가의식이 강했다는 점은 위 시문에서 엿볼 수 있다. 더운 날씨에 큰 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데, 큰 나무는 쉬기도 좋고, 소낙비를 피할 수 있어 좋고, 시원한 그늘에 양산이 되어서 좋다고 이른바 '대수예찬'(大樹禮讚)하고 있는 것이다. 큰 나무 예찬은 바로 국가'민족의식이 그 저변에 깔려 있다.

화자는 분명 큰 생각을 갖는 큰 그릇이었다. 민족의 대서사시 '동명왕편'(東明王篇)의 내용이나 품격은 길이 남을 보배 중의 보배다. 이 시에서도 큰 나무는 모든 백성에게 혜택을 고루 주는 조정이자 나라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규보(李奎報)=고려시대의 문신이자 문인.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지헌(止軒)'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 시'술'거문고를 즐겨 삼혹호선생이라 자칭했다. 시호는 문순(文順).

1207년(희종 3년) 최충헌에 의해 권보직한림(權補直翰林)으로 발탁됐으나 고종 때는 좌천되기도 했다. 예부낭중'한림시강학사를 거쳐 위위시판사에 올랐으나 팔관회(八關會) 행사에 잘못을 저질러 한때 위도(蝟島)에 유배됐다. 비서성판사, 집현전 대학사'정당문학'참지정사'태자소부 등의 자리에 이어 문하시랑평장사'감수국사'태자대보를 지낸 뒤 벼슬에서 물러났다.

호탕'활달한 시풍(詩風)은 당대를 풍미했으며,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그 감상을 읊은 즉흥시는 유명하다. 몽골군의 침입을 진정표(陳情表)로 격퇴한 명문장가였다. 만년에는 불교에 귀의했다.

저서에는 '동국이상국집' '국선생전' '백운소설' 등이 있으며, 작품으로 '동명왕편'(東明王篇) 등이 있다. '천마산시' '모중서회' '고시십팔운' '초입한림시' '공작' '재입옥당시' 등의 시도 남겼다.

장희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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