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미토콘드리아 근병증 앓고있는 다경이

입력 2013-06-12 07:07:14

"제 힘으로 앉기만 해도 더 이상 소원 없어요"

아버지 고동환 씨의 품에 다경이가 안겨 있다. 카메라를 보며 울음을 터트렸던 다경이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 까르르 웃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아버지 고동환 씨의 품에 다경이가 안겨 있다. 카메라를 보며 울음을 터트렸던 다경이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 까르르 웃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10일 대구가톨릭대 칠곡가톨릭병원의 주사실 한쪽에서 '까르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웃음소리의 주인공인 다경(8'여'대구 북구 구암동)이의 손등에는 면역주사제와 영양제 투입을 위한 링거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지만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경이는 아버지 고동환(41) 씨와 어머니 김영아(39) 씨의 얼굴을 보면서 연방 웃기만 했다. 다경이의 엄마, 아빠는 다경이의 웃는 모습을 보며 잠시 시름을 놓는다.

"다경이가 이렇게 웃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맨 처음 다경이의 병을 알았을 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지금까지 다경이가 살아있어 줘서 너무 고마워요."

◆"두 돌을 넘기지 못한다고요?"

다경이가 앓고 있는 병은 '미토콘드리아 근병증'이라는 희귀병이다. 미토콘드리아 근병증이란 우리 몸 세포 속에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미토콘드리아'가 어떤 이상으로 에너지를 잘 만들어내지 못해 생기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린 아이는 근육과 뼈의 성장이 저하되고 시력, 청력 등에 손상이 온다. 다경이도 이 병을 앓으면서 성장이 둔화돼 여덟 살인데도 덩치가 4, 5세 아이 정도다. 또 팔, 다리를 쓰지 못해 누워서만 생활하고 있고 소화기능도 온전치 못해 매일 환자용 영양식과 이유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다경이가 미토콘드리아 근병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다경이를 낳고 6개월이 지나서였다. 다경이가 3개월이 지나도 목을 가누지 못해 '또래 애들보다 조금 늦게 크는 거겠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도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다경이를 보고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대구 시내의 종합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병원들은 모두 원인을 찾지 못했다.

고 씨 부부는 "경기도에 다경이와 비슷한 아이들이 치료받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 경기도에 있는 한 병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3~6개월 단위로 병원을 옮겨다니며 이런저런 치료를 받았지만 다경이의 병은 차도가 없었다.

고 씨 부부는 누군가로부터 '다경이와 비슷한 증상이 있는 아이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도 있더라'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그 대학병원으로 다경이를 데리고 갔고, 그제야 '미토콘드리아 근병증'이라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병명을 듣게 됐다. 어머니 김 씨는 다경이가 그런 무시무시한 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는 가슴이 찢어지는 절망감을 느꼈다.

"결혼하고 6년 만에 어렵게 얻은 딸이었어요. 다경이를 낳기 두 달 전에 집도 마련해서 '아 이제 내 인생에도 봄날이 오는구나' 싶었는데…. 다경이를 데리고 갔던 경기도 한 병원에서는 '두 돌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는 가족 모두 병원 옥상에서 뛰어내릴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어요."

◆다경이의 병을 받아들이기까지

김 씨는 다경이가 네 살이 될 때까지도 고치기 어려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김 씨는 다경이가 아프게 된 것이 모두 자기 때문인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다경이를 데리고 병원 다니면서 생각했어요. '다경이는 일어날 거야. 오늘 푹 자고 눈 뜨면 내일은 서서 자리에 앉아있을 거야'라고요.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받아들일 수 없었죠."

김 씨는 다경이를 간호하면서 6개월 동안 병원 밖을 나가지 않은 적도 있다. 오가며 또래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면 병실에 누워 있는 다경이 생각에 가슴이 미어져 왔기 때문이다. 김 씨 머릿속에는 항상 '내가 뭘 잘못했기에 다경이가 아픈 걸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다경이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이가 건강하지 못한 게 다 자기 탓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김 씨의 눈에 다른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다경이가 누워서만 생활해도, '아빠, 엄마' 이외의 말을 할 수 없어도 다경이가 엄마, 아빠를 알아본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자신을 보며 방긋 웃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기로 한 것.

"병원에 갔더니 다경이보다 더 심한 아이들도 많더라고요. 다경이는 엄마, 아빠 알아보고, 웃기도 하고 나름 감정도 표현하니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늘 당장 일어서지는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치료약이 개발돼 다경이가 나을 거야'라는 희망을 갖고 돌보고 있어요."

◆치료제, 치료비도 없어

고 씨 부부와 다경이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미토콘드리아 근병증을 완치할 수 있는 치료약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최선의 치료는 미토콘드리아 근병증 발병 속도를 더디게 하는 약과 여러 비타민을 대량으로 공급해 대사가 잘 이뤄지도록 하는 정도다. 그래서 다경이는 매주 한두 번은 칠곡가톨릭병원에 들러 비타민 주사를 맞아야 한다.

치료약과 비타민 주사를 맞는 데 드는 비용은 20만~25만원 정도. 매달 80만~100만원을 다경이의 병원비로 쓰는 셈이다. 이 밖에도 한 달에 한 번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통해 병의 진행 상태를 확인하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도 수백만원이 들어간다.

다경이의 병원비는 고 씨 부부에게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다. 고 씨는 한 인쇄업체에서 일하면서 150만원을 받는데 이 월급은 다경이 치료비로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다경이의 병원비와 집을 살 때 빌렸던 대출금, 생활비 등을 마련하느라 퇴직금 중간 정산을 통해 돈을 변통해야 했고 대출까지 받아야 했다. 그러나 퇴직금마저 중간 정산을 통해 거의 다 써버렸고, 빚도 점점 늘어나 4천만원이던 대출금이 1억원을 훌쩍 넘겨버렸다.

고 씨 부부에게는 소원이 있다. 물론 하루빨리 완쾌돼 정상 생활을 하는 것이 기장 큰 소원이지만 우선은 치료비 걱정 없이 다경이를 치료하고, 휠체어에 앉는 모습이라도 보는 것이다.

"우리 부부가 죽기 전에 다경이가 휠체어에 앉기라도 했으면 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다경이 웃는 거 보면서 언젠가는 나을 거란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지금은 비록 힘들지만…."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매일신문'대한적십자사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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