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이동 자유화론자들은 자본시장 규제 완화가 저개발국들이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투자 활성화와 성장 촉진을 가능케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금융 위기로 한 국가의 경제가 쑥대밭이 되어온 것이 자본시장 자유화 이후 벌어진 일이다. 해외 자본은 경제가 순항할 때는 돈을 마구 빌려주다가 위기 조짐만 있어도 자본을 빼낸다. 1997년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당한 그대로다.
이는 이미 1930년대에 확인된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 무렵 명망 높던 경제학자 래그나 넉시는 해외 자본의 속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누구나 빌릴 수 있으나 비가 오기 시작하면 바로 반납해야 하는 우산과 같다." 이런 문제 때문에 신자유주의의 교본으로 일컬어지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창시자 존 윌리엄슨도 자본시장 규제 완화에는 회의적이었다. 자본시장 자유화가 금융 위기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케네스 로고프와 카르멘 라인하르트의 연구에서 확실하게 입증됐다. 이들이 1800년 이후 발생한 모든 금융 위기를 시기별로 분석한 결과 금융 위기의 시기는 자본이동의 시기와 정확히 일치했다.
결국 금융 위기를 막으려면 자본 이동을 통제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너무 엄격한 통제는 자본이 부족한 국가들의 자본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문제를 야기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적당한' 수준의 통제다. 그 구체적 방안으로 국제 자본거래에 세금, 이른바 '토빈세'를 매길 것을 주장한 사람이 미국의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이다. "우리가 할 일은 지나치게 잘 돌아가는 국제 금융시장의 바퀴에 모래를 약간 던지는 것이다." 적정 수준의 세금을 부과하면 국제 자본의 활동성을 적절히 둔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토빈세는 일부 국가만 실시하면 국제 자본거래가 토빈세가 없는 곳으로 이전해 효과가 반감되는 문제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가 지난 2009년 브라질이 처음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 가능성으로 자본 유입이 줄고 헤알화 가치가 급락하자 브라질 정부는 토빈세를 전격 폐지했다. 이는 유럽연합(EU)의 토빈세 도입 계획의 후퇴와 맞물리면서 올 들어 적극 검토됐던 '한국형 토빈세'도 힘을 잃을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제 자본에 그렇게 당하고도 교훈을 찾지 못하는 이런 모습을 보고 토빈은 뭐라고 할까. 아마 혀를 끌끌 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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