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나는 21세기 실크로드] <3부> 10. 테헤란을 떠나며

입력 2013-06-08 07:49:48

밝은 모습의 히잡 쓴 여학생들…강남스타일 춤 따라하며 '깔깔'

이란 사람들은 이슬람의 전통과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검은 히잡 차림의 여학생들이 친구들과 밝은 표정으로 즐거워하고 있다.
이란 사람들은 이슬람의 전통과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검은 히잡 차림의 여학생들이 친구들과 밝은 표정으로 즐거워하고 있다.
테헤란 시내에 있는 팔레비 왕조의 녹색궁전. 일명 여름궁전이라고도 한다.
테헤란 시내에 있는 팔레비 왕조의 녹색궁전. 일명 여름궁전이라고도 한다.
페르시아 건국 2천500년을 기념해 1971년 팔레비 왕조 때 세운 아자디 탑이 멀리 보이는 알보르즈 산맥의 새하얀 연봉들과 조화를 이룬다.
페르시아 건국 2천500년을 기념해 1971년 팔레비 왕조 때 세운 아자디 탑이 멀리 보이는 알보르즈 산맥의 새하얀 연봉들과 조화를 이룬다.
돌문 위에 한글로 공원 이름이 적혀 있는 테헤란의
돌문 위에 한글로 공원 이름이 적혀 있는 테헤란의 '서울공원' 입구. 한국적인 정취를 테헤란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은빛 만년설이 빛나는 해발 4,000m급의 알보르즈 산맥. 새하얀 연봉들이 줄지어 서 있는 남쪽 기슭에 약 720만 명의 인구를 가진 국제적 대도시가 둥지를 틀고 있다. 세계 역사상 보기 드문 이슬람 혁명의 진원지로 유명한 곳,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라이'라고 불리는 고대도시가 먼저 있었는데 16세기 초 사파비 왕조 때 궁전과 정원을 만들고 실크로드를 왕래하는 낙타대상들의 숙소 '카라반 사라이'와 시장터를 건설함으로써 도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러다가 1789년 카자르왕조의 창건자 모함마드 칸이 테헤란을 수도로 선포했다. 그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테헤란은 이란의 수도로서 명성을 누려왔다. 20세기 들어 테헤란은 현대화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현재 도시 형태의 바탕이 되는 도로망이 정비되고 고층빌딩들의 건축도 진행되었다. 성벽은 파괴되고 거대 도시로 변해갔다. 그러나 막대한 석유 수출에 의한 급속한 번영과 서방 일변도의 전제정치는 이슬람혁명의 원인이 되어 왕정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란은 지금도 전통과 현대의 갈등 속에 몸부림치고 있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자동차를 타고 테헤란 거리로 나서자 극심한 교통체증과 소음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격동의 물결을 타고 새로운 역사가 기록되고 있는 현장을 피부로 느낀다. 세계 유명도시의 교통 혼잡도에 있어서 테헤란은 언제나 상위 순위에 든다고 한다. 정부도 교통환경 개선에 주력하고 있으나 비교적 기름값이 싸기 때문인지 자동차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끝없이 밀려 있는 자동차들 가운데는 한국형 모델도 자주 보인다. 우리나라와 이란과의 교류는 페르시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수도 테헤란과의 역사적인 교류에 대해서도 중요한 기록이 남아있다. 테헤란의 옛 도시 라이 출신의 상인들이 1024년 헌종 15년 고려 조정까지 찾아와 왕을 알현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나와 있다. 어쩌면 그 천 년 전의 인연이 이어져 오늘날에도 서울 강남구에 '테헤란로'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한'이 양국 정부가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많은 행사를 개최했을 정도로 교류의 역사는 깊다. 그래서 테헤란에도 '서울로'가 있고 이 도로 근처에 '서울공원'도 있다. 1977년 테헤란 시장이 한국을 방문해 당시 구자춘 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양국의 우호를 위해 각각의 시설을 만들기로 합의해 설치되었다. 입구의 돌문 위에 한글로 '서울공원'이라고 적혀 있고 공원의 분위기도 한국적이라 한국의 정취를 테헤란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테헤란 국제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오는 진입로에 당당하게 서 있는 아자디 탑은 일명 자유의 탑으로 불리며 현대식 위용을 자랑한다. 높이 45m에 영어로 Y자를 거꾸로 놓은 것같이 생긴 이 탑은 테헤란의 랜드마크이다. 페르시아 건국 2천500년을 기념해 1971년 팔레비 왕조 때 세웠으나, 이슬람혁명 당시 이 탑을 중심으로 한 광장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다. 탑의 지하는 박물관이어서 관람객들로 북적인다. 검은색 히잡 차림의 여학생들도 많이 보인다. 초등학생들은 한국서 온 방문객들 앞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을 추어 보이며 깔깔거린다. 여학생들도 차림새가 비록 히잡은 했으나 발랄하고 명랑하다. 이란에 오면 여성들은 외국인이라도 머리에 스카프를 쓰고 엉덩이가 가려지는 긴 상의를 입어야만 한다. 모든 나라들이 각국의 전통과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래 펼치고 있는 서양문화 배척운동의 일환인지는 몰라도 성인 남성들도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고 한다.

테헤란 도심지에서는 관광객이라도 사진촬영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모든 관공서 건물은 사진촬영에 대한 보안요원들의 단속이 삼엄하다. 하루라도 빨리 테헤란을 벗어나면 마음껏 풍경과 유적들을 찍을 수 있다. 그런데 여행기간 동안 많은 이란 사람들이 자기를 촬영해 달라고 요구했었다. 게다가 사진을 보내달라는 요구도 하지 않는다. 태권도와 드라마 대장금, 주몽의 나라에서 온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서인지는 몰라도 이란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사진 찍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이제 테헤란을 벗어나 이란을 떠나려 한다. 오늘날의 테헤란에는 혁명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거움, 비참함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거리와 시장을 걸으며 인파 속에 융화되어 보고 버스에 올라 그 극심한 교통체증도 체험해 본다. 파란만장한 역사의 파도를 헤치며 굳세게 살아온 사람들의 질긴 생명력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음 일정을 위해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종점이며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 즉 오늘의 이스탄불이 있는 터키로 향한다. 글'사진: 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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