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새로 취임한 권영세 주중대사

입력 2013-06-07 09:02:42

"하루하루가 '대통령 특사'…안보·경제·문화 등 외교만 생각할 터\

권영세(54) 주중대사는 이달 4일 중국 베이징(北京)의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한중 수교 21주년 만에 제10대 주중대사다.

주중대사로 낙점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중국대사로 가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검사로 일하다가 정치인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그가 지난 총선에서 아깝게 낙선하긴 했지만 주중대사 같은 막중한 외교관의 자리는 상상도 못한 도전이었다.

"(주중대사를 맡아달라는 말을 듣고)처음에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미국이나 중국 등 한반도 주변 주요 나라의 대사직을 정치인이나 정치적인 역할을 가진 인사를 보내는 것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막상 그 '폴리티컬 어포인티'(political appointee'정치적 임명자)로 나보고 가라고 했을 때는 적잖게 당황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역대 중국대사 중에서는 황병태, 류우익 전 대사 등을 권 대사와 같은 폴리티컬 어포인티로 분류할 수 있다. 16, 17,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3선 출신의 권 대사는 박 대통령이 2011년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사무총장에 임명한 이후 지난 대선 때까지 핵심 역할을 맡으면서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돼 왔다. 그래서 그를 주중대사로 임명한 것은 한중 관계에 대한 박 대통령의 정치적 의중이 실린 인선으로 해석되고 있다.

사실 그는 중국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다. 그래서 우려도 적지 않다. 검사 시절 독일 법무부에 파견을 간 경험과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공부한 적은 있지만 중국의 주요 인사와 교류하거나 중국과 각별한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 그래서 당연히 중국어는 구사하지 못한다. 중국대사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지만 중국 측에서는 권 대사의 부임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가 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측근이어서 주중대사로서 박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 한중 최고 지도자 간의 소통 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권 대사는 주중대사로서의 역할에 대해 "한중 관계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책임감이 무겁기는 하지만 도전할 만하다. 재미있을 것도 같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새누리당을 탈당했다는 점을 밝히면서 "중국에 가 있는 동안에는 개인적으로 정치적 비중 따위는 잊어버리고 외교적 차원, 특히 안보외교라든가 경제, 문화외교라든가 이런 부분만 생각하겠다"며 전의(戰意)를 다졌다.

그는 주중대사로 부임하기 전 짧은 기간이지만 집중과외를 받았다. 중국통 교수들과 전임 중국대사들을 만나 외교현장에서의 실제적인 경험담을 집중적으로 청취했다. 중국어도 배우기 시작하면서 중국 고위 관계자와의 친교에 대비해 따라 부르기 쉬운 중국 노래도 한 곡 배워뒀다.

"(주중대사로서의) 준비는 끝이 없는 것 같다. 아마 이미 오래전에 중국대사를 지내고 중국에 대해 나름대로 잘 안다고 평가받는 사람들도 새롭게 그런 역할이 주어진다면 준비할 것이 많을 것이다. 그에 비해 모든 것이 부족한 나로서는 준비할 것이 더 많은데 나 나름대로는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준비했다. 부족한 부분은 현지에 부임해서 하나하나 채워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권 대사에게는 당장 오는 6월 말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을 성공적으로 준비해서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지원을 끌어내는 등의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대통령께서 주중대사 임명장을 주면서 각별히 당부한 말씀은.

"(대통령께서는)한중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강조하신 바 있다. 그 정도만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다. 한중 관계에 대해서는 제게뿐만 아니라 공개된 자리에서도 강조하시지 않았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당선된 직후 김무성 의원을 특사로 중국에 보냈고 이런 부분을 보면 박 대통령께서 중국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시는 것은 분명하다."

-부임하기 전에 다섯 명의 전임 대사들을 만나셨는데 '멘토'로 삼고 싶은 분은 누구인가.

"다 각자 장단점이 있어 어느 한 분을 닮고 싶다기보다는 그분들이 주중대사로서 일하면서 회고한 쉬웠던 일과 어려웠던 일 모두가 다 도움이 된다. 언론에서는 역대 주중대사의 역할에 대해 다른 평가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주중대사 개인의 능력 차이라기보다는 당시의 외교적, 국제적 상황도 있었고 한중 간의 특수한 상황도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 것을 감안할 때 누가 더 잘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대사가 부임해서 부닥치게 된 현안들에 대해 이렇게 풀어나갔을 때는 잘됐고 미진했던 부분에 대해 좋은 것은 좋은 대로 아쉬웠던 것은 아쉬웠던 대로 벤치마킹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영향력을 가졌던 주중대사들에 대해서도 황병태 전 대사와 류우익 전 대사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바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그런 식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류 전 대사는 한중 관계가 어려울 때 일을 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사태 등으로 상당히 힘들었을 때다. 그때 류 전 대사는 오히려 지방 성(省)을 다니면서 우리 기업들을 위한 경제외교에 치중하고 성(省)의 책임자로 있는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들과도 여러 가지 협력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입장을 이해시킨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대사에게 작은 성공과 실패는 있을 수 있다. 그런 부분들을 다 벤치마킹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교라는 것은 특히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굉장히 많다."

-4강 대사 중에서는 가장 정치적 인선이다.

"저를 임명한 데는 그런 부분이 있을 것이다. 저는 직업 외교관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박 대통령의 특사다'라는 생각으로 일할 생각이다.

특히 중국에 있는 동안에는 국내 정치에 대해서는 모두 잊어버릴 생각이다.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지만 돌아온 이후의 일을 생각한다면 정치인으로서는 굉장히 드문 좋은 경험이라고도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정치인' 권영세가 특히 퍼블릭섹터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가장 큰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남북 문제와 통일과 중국에 대해 깊이 관여할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굉장히 큰 행운이다."

-중국을 잘 모른다는 점에 대해 우려가 있다.

"중국에는 몇 번 가본 것이 전부다. 많이 가보지 않았다. 그러나 한반도 통일 키(key)의 굉장히 큰 부분을 중국이 쥐고 있다. 예전에 독일에 가서 독일 통일 과정을 봤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러시아는 동서독 양쪽으로부터 어려움에 처해 있었고 통일 후 곧바로 해체됐다. 거기에 비해 중국은 G2로 발돋움한 나라다. 중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어서 평소에도 통일을 위해 중국에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대사로 부임한 후 만나게 될 지도부에 대한 이해와 중국사회에 대한 이해, 그리고 현재의 한중관계에 대한 이해 이런 세 부분에 대해 조금씩 다 공부했다."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것에 대해 충격을 받지 않았나.

"정치인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지는 것을 수없이 봤다. 나라고 해서 승리만 있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러나 낙선하고 나서 실망하고 충격을 받았지만 바로 대선이 있어서 그 충격의 후유증에 시달릴 여유가 없었다."

그는 지난 18대 총선에 앞서 사무총장으로서 공천 실무를 주도하면서 총선을 진두지휘했지만 정작 자신은 총선에서 낙선했다. 그러나 곧이어 발족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에서 종합상황실장을 맡아 대선 때까지 중책을 맡았다.

-원조 친박은 아니지 않은가. 박 대통령과의 인연은 어떻게 되는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 중립선언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는 대표 시절이던 2005년 전략기획위원장으로 임명받으면서 호흡을 맞췄고 2006년 지방선거 때는 서울지역 공천심사위원장을 역임했다.

박 대통령과 본격적으로 가까워지게 된 것은 2011년 박 대통령과 의원 4명이 단출하게 유럽특사를 다녀오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그리고 2011년 연말 비상대책위를 출범하면서 박 대통령께서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2008년 중국특사 때도 같이 갔다. 다행인 것은 박 대통령을 모시고 일할 때마다 일이 다 잘 됐다는 점이다."

-검사 생활을 하다가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은 장인의 영향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구체적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검사를 하면서 뭔가 미진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였다. 검사 생활도 수사보다는 법무행정을 주로 했는데 그래서 정치에 나서게 됐다.

10년 이상 정치인으로 살다가 다시 외교관으로 행정 쪽으로 오게 됐다. 국회의원 하면서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도 일했고 정보위원장도 해봤고 이런 경험을 살려서 접목시킨다면 힘들겠지만 주중대사 역할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중대사 통보 왔을 때 거절하지 않고 수락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 총무수석을 지낸 유도재 씨가 그의 장인이다.

그는 중국에 부임하면서 부인과 두 아들을 모두 중국에 데리고 가기로 했다. 홍콩과 국내의 학교에 다니고 있는 두 아들을 중국에 데리고 가서 중국을 제대로 배울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다. 이는 미국 일변도에서 벗어나 중국을 경험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권 대사 스스로의 생각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