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나는 10대 이전부터 불법의 유혹에 빠졌다. 동네 유지 노릇을 하던 시계 방과 동네 헤게모니를 두고 라이벌 관계인 사진관을 지나면 만물상을 겸한 레코드 가게가 있었는데 이곳이 불법의 진원지였다. 주인장은 당시 내게 최고의 음악 전문가였는데 도대체 모르는 음악이 없는 듯했다. 특히 좋아하는 노래만 적어 주면 카세트테이프에 척척 녹음을 해 주는데 세상 음반은 다 가지고 있는 듯했다. 가끔 카세트테이프에 시간이 남으면 서비스로 몇 곡 더 녹음해 주었는데 그 가운데 보석 같은 곡들도 있었으니 불법이었지만 행복할 수밖에.
언젠가 집에 있던 장전축에 빨간 딱지가 붙어 사라진 이후 한동안 내 LP 생활은 중단되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보따리 장사가 동네마다 다니며 할부(그땐 월부)로 팔던 독수리표 쉐이코 카세트였는데 이게 생기면서 레코드 가게 주인 행세를 하며 또 다른 불법에 빠졌다. 라디오에 나오는 노래를 녹음해 나름대로 소장판을 만들기도 했는데 더블 데크가 나오고는 아예 제대로 편집을 해 친구들에게 팔기도 했으니 불법이 제대로 시작되었다. 주인집 누나에게 잘 보이려고 선물한 건 돈을 안 받았으니 불법인지 모르겠다만.
어느 날 동네에 새로운 미디어 강자가 등장했다. 레코드 가게 건너 서점 한쪽에 들어선 정체불명의 기계는 동네에 딱 세 명 있던 대학생 형들이 애용하더니 이내 어른들이 종이를 엎어두고 또 다른 종이를 가져간다. 책이나 서류를 똑같이 복사해 내는 능력에 감탄했는데 갑자기 직접 책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씨를 예쁘게 쓰는 애들을 모으고 글 좀 쓰는 애들도 모으고 그림 그리는 애도 모았다. 잡지나 신문, 책에 있는 그림도 오려붙이면서 편집장 노릇을 했는데 아직도 그 시절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있으니 추억이 되긴 했나 보다. PC 이전 시절이었으니 복사비용도 꽤 들었던 기억인데 여차저차 만든 동인지를 팔기 위해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부록으로 끼워 넣었다. 이 정도면 불법의 총아였지만 저작권 개념도 없었던 시절이니 지금 나를 어찌하지는 마시라.
소수자들을 위한 공간 마련에 참여한 적이 있다. 뜻있는 사람들이 공간의 보증금을 내 주면 월세와 운영은 알아서 하는 방식이었는데 성소수자, 양심적 병역 거부자, 결혼이주여성,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모여 동인지를 만들었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불법을 자행하던 예전이 떠올랐다. 그때는 이런 일을 동네에서 해결할 수 있었는데.
권 오 성(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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