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칸막이문화와 소통

입력 2013-06-05 07:34:34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다. 너무나 유명한 시라서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현대인의 소외감과 군중 속의 외로움을 가장 짧은 단어로 표현한 명작이다. 개인 간 방치되고 있는 이 외로운 섬이 우리 조직 사이에서도 존재하는 것 같다. 나는 조직 간에 방치되고 있는 이 섬은 방, 칸막이 같은 소통의 장애물들이라고 생각한다. 즉 조직과 조직 사이에 존재하는 방과 칸막이가 또 하나의 섬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달리 '방' 문화를 좋아하는 걸까? 노래방, 소주방, 비디오방, PC방 등 뜨는 아이템에는 '○○방'이라는 업종으로 한동안 유행해왔다.

조직 생활에서도 사람들은 방을 좋아하는데 조직 생활에서의 방의 의미는 승진의 대가이며 자신의 입지를 보여주는 함축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 문화를 즐길 수 없는 평직원이라면 방 대신에 칸막이에 의존하게 되는데 높은 칸막이 속에 파묻히는 것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근무 조건이다.

이러한 방 중심의 문화와 높은 칸막이가 의미하는 것은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의 상징이며 본능적인 소통의 귀찮음일 것이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많이 간섭하려 하고, 아랫사람은 이러한 간섭이 본능적으로 싫기 때문에 더 높은 칸막이를 쌓으려고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조직 간의 위계구조만을 강조하고 전문성보다는 조직 관성을 신뢰하는 업무 스타일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소통을 단절시키는 칸막이를 쌓게 만든다. 누구나 의사소통이 안 되는 벽 앞에 서면 자기 보호를 위해서 벽을 쌓을 수밖에 없다.

새 정부 들어와서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 지식융합, 창조경제로 대표되는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이 반영된 당연한 지시라고 생각되는데 이러한 칸막이를 없애기 위한 노력이 눈에 보이는 것만 치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가 시너지 효과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나 정보를 공유하려는 열린 마음 자세보다는 칸막이 그 존재 자체에 집착하는 것 같다.

대구시는 지형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경상북도에 안에 있으면서 주변에는 구미, 포항 등 대표 산업도시들이 즐비해 있다. 지역별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우수 농산물을 생산하는 많은 군, 면이 펼쳐져 있다. 이 얘기는 대구와 경북은 서로 소통을 통해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주변에서 그만큼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나 대구의 경쟁도시들은 서비스, 제조 산업을 융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려 협력의 틀을 만들고 있는데 과연 우리(대구, 경북)도 그렇게 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대구와 경북이 서울과 같은 인프라의 일자리 수준을 갖출 수는 없지만 둘이서 지역별로 특화되어 있는 성장 잠재력을 모을 수 있다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대구와 경북이 수출입 물품을 품목별, 국가별로 구분해 가능한 영일만으로 집중한다면 영일만 활성화는 물론 새로운 선박의 '영일만-특정 국가 직항로' 개설 효과까지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런 것들은 섬을 없애고 소통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이다. 2013년 하반기 이후 대구경북은 여러 국제행사를 앞두고 있다. 소통을 통해서 만들어진 융합지식은 다양한 사람을 이해시킬 수 있기 때문에 국제행사일수록 더 많은 소통이 필요하다.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행사를 위해서 의견을 표현하고 이러한 의견들이 반영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필요한 것이다.

그동안 대구시와 달빛동맹을 맺은 광주시조차 엑스코에서 조만간 개최 예정인 'DA-FOOD'에 광주식품(음식)을 가지고 와 대구식품(음식)과 실질적인 소통을 하려 한다. 이러하거늘 지금 이 시점이야말로 대구와 경북이 칸막이를 없애고 소통을 통해 상생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가야 할 때가 아닐까? 대구와 경북은 한 우물을 마시다가 언젠가 행정편의로 구분되었을 뿐인데 대구에 와 산 지 2년밖에 안 된 내 눈에는 어느새 많은 섬이 생겨난 듯 보인다. 들리는 소문에는 도청 공사가 당초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전 스케줄에 맞춘다는 차원에서 일부 기능이라도 내년에 꼭 보낼 거란다. 도청 이전으로 인해 대구'경북 사이에 더 많은 섬이 생기기 전에 소통을 위한 TF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박종만/엑스코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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