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Track' 기록으로 본 라이온즈] (3)그라운드의 난투극 (상) 몰수게임

입력 2013-06-04 09:14:53

1982년 삼성-MBC전 첫 몰수게임 기록

배대웅 선수
배대웅 선수
프로야구 사상 첫 몰수게임은 1982년 8월 26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과 MBC전에서 4회말 삼성 1루 주자 배대웅과 MBC 2루수 김인식이 충돌하면서 발생했다. 사진은 당시 매일신문에 게재된 기사와 배대웅 선수. 매일신문 DB
프로야구 사상 첫 몰수게임은 1982년 8월 26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과 MBC전에서 4회말 삼성 1루 주자 배대웅과 MBC 2루수 김인식이 충돌하면서 발생했다. 사진은 당시 매일신문에 게재된 기사와 배대웅 선수. 매일신문 DB

두산과 넥센 경기가 펼쳐진 지난달 21일 잠실구장. 넥센이 12대4로 앞선 5회초 넥센 2루 주자 강정호가 3루를 훔쳤다. 마운드에 있던 두산 투수 윤명준은 곧바로 사구 2개를 유한준과 김민성 몸에 꽂아 넣었다. 심판은 퇴장을 명했지만, 두 팀 선수들은 그라운드 한 가운데로 우르르 몰려나왔다. 두산은 큰 점수 차로 이기는 데도 도루를 감행한 데 넥센의 속셈에, 넥센은 고의적인 연속 몸에 맞는 볼에 흥분한 것.

이처럼 경기를 하다 보면 때로는 매너 없는 행위나 감정이 상해 돌발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프로야구 사상 첫 몰수게임도 거친 플레이와 이를 참지 못해 화가 폭발한 게 발단이 됐다.

1982년 8월 26일 삼성과 MBC의 경기가 펼쳐진 대구시민야구장. 일은 5대2로 앞선 삼성의 4회말 공격 때 발생했다.

1사 1, 2루에 주자를 두고 공격하던 삼성의 정현발이 유격수 앞 땅볼을 쳤다. MBC가 병살 처리하던 과정에서 1루 주자 배대웅이 더블플레이를 저지하려 2루에서 슬라이딩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배대웅과 2루수 김인식의 신체접촉이 있었다.

발을 높이든 위험한 행위에 화가 난 김인식이 배대웅의 얼굴을 때렸다. 분위기는 험악해졌고, 김동앙 주심은 폭행을 가한 김인식에게 퇴장을 명했다. 그러나 MBC 백인천 감독이 원인을 제공한 배대웅은 내버려두고 김인식에게만 제재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그라운드에 있던 모든 선수들을 더그아웃으로 불러들였다. 백인천 감독은 경기를 속개할 수 있도록 선수들을 내보내 달라는 김동앙 주심의 요청을 거부하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치상태가 25분이 흐르자 김동앙 주심은 몰수게임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프로 사상 첫 몰수게임이었고 그 경기는 야구규칙에 따라 삼성의 9대0 승리로 기록됐다.

삼성은 이날 승리를 계기로 후기리그 우승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고, 결국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이틀 뒤(8월 28일) 한국야구위원회 상벌위원회는 MBC에게 제재금 200만원과 함께 그날 입장수입의 전액을 배상케 했다. 그리고 백인천 감독에게는 제재금 100만원에 5게임 출장정지, 김동앙 주심에게는 제재금 20만원에 5게임 출장정지, 박명훈 2루심에게는 제재금 15만원에 5게임 출장정지 결정을 내렸다.

김인식에게는 제재금 10만원만 부과했을 뿐 출장정지는 내리지 않았다. 당시 경기는 MBC의 시즌 61번째 경기였고, 이후 김인식은 1987년 10월 3일까지 6년 연속 전 경기 출장과 그에 따른 606연속경기 출장기록(현재까지 역대 4번째 기록)을 세웠으니, 만약 그 사태의 책임을 물어 출장정지가 내려졌다면 연속출장기록은 61경기가 줄어들었을 것이다.

몰수경기는 1985년 7월 16일 MBC와 OB의 잠실 경기에서도 발생했다. 5대5로 팽팽하게 맞서 있던 6회말 1사1, 3루에서 MBC는 1루 주자 박흥식이 2루를 훔치다 협살에 걸린 사이 3루 주자 유고웅이 홈을 파고들어 승부의 균형을 깨뜨렸다. 그러자 OB 김성근 감독이 협살 당하던 박흥식이 몸을 피하면서 스리피트라인을 벗어났으므로 그 즉시 아웃이며 득점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양경 2루심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김성근 감독은 수비 중이던 선수들을 벤치로 불러들였다. 이근우 주심은 5분간의 여유를 주고 경기속행을 종용했으나 OB가 이를 따르지 않자 김성근 감독을 퇴장시켰고, 다시 5분 안에 감독대행을 지정하고 경기를 속행하라고 요구했으나 불응하자 몰수게임을 선언해버렸다.

초창기, 극한 감정대립이 빌미가 돼 발생했던 몰수게임은 점차 '프로'라는 문화가 정착하면서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30여 년 동안 사실 이보다 더한 일들이 무수히 있었으나 극단적 결과를 선택하는 감독은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간혹 선수들을 벤치로 불러들이기도 했지만, 그땐 1명은 그라운드에 남겨 간접적으로 경기진행의사를 표시했고, 결과가 뒤집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억울함만 나타낸 뒤 사태를 봉합했다. 프로야구는 그렇게 조금씩 쇼맨십을 갖추며 진화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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