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재의 은퇴일기] 사나이 울리는 경조사비

입력 2013-06-01 08:00:00

6월입니다. 각종 행사가 많은 5월을 힘겹게 보내고 이제야 한숨 돌리나 했더니 이번 달도 만만치 않을 듯합니다. 경조사비용 때문이지요.

퇴직하고 나면 가장 큰 목돈 사용처가 바로 부조입니다. 대개 50대 중반부터 60대 중반까지 경조사가 제일 많은 시기입니다. 문제는 이때가 은퇴자들에게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기간이라는 점입니다. 은퇴는 했으되 연금을 받지 못하는 나이이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체감부담이 클 수밖에 없지요.

제가 아는 한 퇴직자는 경조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결국 집에 있던 금붙이를 팔았습니다. 생활비로 부조를 마련할 길이 없어 이것을 팔아 조금씩 쓰고 있다고 했습니다. 받을 때는 좋았지만 나중에 갚으려니 부담이 엄청났다고 고개를 내저었지요. 집에 있는 금붙이까지 팔아서 부조를 해야 하는 것이 은퇴자들의 현실입니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50~70대 은퇴자 500명을 대상으로 경조사비에 대한 조사를 했더니 한 해 평균 부조금만 120만원이었습니다. 결혼식은 한 달에 한 번, 장례식은 두 달에 한 번 참석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축의금은 평균 7만원, 부의금은 7만3천원을 지출하고 있었습니다.

경조사비가 부담되느냐고 물었더니 80% 이상이 부담된다고 했습니다. 1%만 전혀 부담되지 않는다고 답했답니다. 그런데도 응답자 중 절반은 경조사비용을 줄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관행인데다 체면 때문에 더 이상 적게는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모임에 가입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왕 알았던 사람들과의 부조는 그대로 하되 더 이상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지 않는 것이지요. 대한민국 은퇴자들이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관계를 맺으면 부조나 챙겨야 할 비용이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지요.

'나 홀로'산행이 많은 것도 그런 까닭이라고 은퇴전문가는 설명했습니다.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거나, 나갈 경우에도 혼자 하는 취미를 가져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부조 때문이랍니다. 호랑이보다 더 무섭습니다.

경조사 문화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다들 말합니다. 결혼을 가족과 친척 중심으로 간소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부조를 본인의 경제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답변도 있습니다.

경조사비가 무서워 대한민국 사나이들이 집 밖에도 못 나가고 방안에 웅크리고 있다고 합니다. 기막힌 현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순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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