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인줄 알고 퍼뜨린 상사 부정, 명예훼손 성립될까

입력 2013-05-30 10:57:50

대법원 "비리 맞다면 무죄" 법관들 "그래도 명예훼손"

대법원이 최근 '사실로 믿은 직장 상사의 비리를 유포한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인정한' 판결을 내리면서 명예훼손죄 성립 범위에 대한 궁금증을 낳고 있다.

대법원은 이달 9일 직장 상사와 관련된 확인되지 않은 비리 사실을 회사 대표이사에게 보고하고 동료 직원들에게도 단정적으로 반복해 언급하는 바람에 다른 직원들에게 전파돼 직장 상사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킨 혐의(명예훼손)로 기소된 A(48)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대로 무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회사 대표이사에게 문제를 제보해 특별조사팀이 구성될 예정이었고 실제 조사가 이뤄졌으며 문제를 조사하던 동료 직원들에게 의혹을 강하게 제기한 점 등을 고려하면 허위임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허위임을 알지 못했다면 명예훼손이 될 만한 내용을 유포해도 괜찮은 걸까. 이에 대한 법관들의 대답은 "아니요"다.

이번 판결은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성립 여부'에 대한 판단일 뿐으로 허위임을 알면서도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훼손을 한 건지 아니면 진짜인 줄 알고 얘기한 것인지를 가린 판결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적시(유포) 사실이 허위여야 하고, 피고인도 그게 허위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판결 요지라는 것. 허위사실이라는 것을 알고도 뒷담화를 했다는 것에 대한 입증은 검사가 해야 하고, 이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관들은 나아가 '유포한 내용이 진짜라고 하더라도 명예를 훼손하면 처벌을 받게 되고, 그게 허위사실이라면 더 큰 처벌을 받는다'고 설명한다.

실제 형법 307조엔 이 둘을 모두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A씨가 동네 주민들에게 "B는 바람둥이"라며 B씨에 대해 뒷담화를 했고, 실제 B씨가 바람둥이라면 A씨는 B씨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 된다. 때문에 A씨는 형법 제307조 제1항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만약 B씨가 바람둥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바람둥이라고 얘기하고 다녔다면 307조 2항에 의해 더 중한 처벌(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또 B씨가 실제론 바람둥이가 아닌데 A씨는 바람둥이라고 믿고 이 사실을 유포했다면 이 역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허위에 관한 고의가 없었더라도 잘못된 얘기를 퍼트렸다면 형법 307조 1항에 해당하는 명예훼손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

조순표 대구지방법원 공보판사는 "허위임을 알았든 몰랐든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얘기를 유포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며 "이번 대법원 판결도 허위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해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을 뿐 명예훼손죄로의 처벌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