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인물] 유일하게 독립운동 나선 왕족 이강

입력 2013-05-27 07:50:00

'우리나라의 임시정부에 합류해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는 동시에 조국의 독립과 세계평화에 헌신하겠다.' 1919년 3·1만세운동 후인 11월 상해 임시정부로 망명하려다 일제 감시망에 걸려 실패한 고종 황제 아들 의화군(義和君) 이강(李堈'1877~1955)은 임시정부에 보낸 글에 일제에 대한 복수와 조국 독립의 열망을 담았다. 왕족 가운데 유일하게 독립운동에 발벗고 나섰으나 일제 땐 감시로, 광복 후엔 황실 배척정책을 편 이승만 정부의 견제로 불운한 생을 마쳤다.

그는 1895년 오늘 6개국 특파대사로 임명돼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를 차례로 방문하는 특사로 활약했다. 일본에도 파견되는 등 국제 정세에 관심 많았던 그는 1900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오하이오주 웨슬리언대학(Wesleyan University)과 버지니아주 로노크대학(Roanoke College)에서 공부해 국제 정세에 민감했다. 유학 중 의친왕(義親王)에 책봉됐지만 1910년 나라가 망하자 공(公)으로 강등됐고 독립에 강한 열망을 가졌다.

3·1운동에 이은 2차 만세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왕족으로서는 유일하게 그의 이름이 올랐고, 상해 망명 미수사건도 그런 맥락이었으며, 1921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5대 열강회의 때 조선의 독립을 촉구한 건의서에서도 왕족 대표인 그의 이름이 나오는 이유다.

정인열<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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