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외국인 근로자 부부의 뇌수막염 앓는 신생아

입력 2013-05-22 07:17:45

이국 땅에서 아빠가 할 일은 기도 뿐…

카민두(가명
카민두(가명'39) 씨가 아내로부터 받아온 모유를 아들 힌산드(가명'생후 1개월)에게 먹이고 있다. 힌산드는 모유를 먹으면서 카민두 씨를 반짝이는 눈으로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고, 카민두 씨는 그런 아들의 모습에 마음을 놓는다. 이화섭기자

구미의 한 종합병원 신생아실. 스리랑카인 카민두(가명'39) 씨가 작은 쇼핑백을 들고 신생아실에 들어왔다. 쇼핑백 안에는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있는 아내의 모유가 들어 있었다. 카민두 씨는 이 병원 신생아실에 있는 아들 힌산드(가명'생후 1개월)에게 모유를 먹이기 위해 매일 병원을 들른다. 카민두 씨는 힌산드가 태어난 뒤 지금까지 한순간도 마음을 놓은 적이 없었지만 아들이 맑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모유를 먹는 모습을 보면 그 순간만큼은 걱정이 싹 사라진다.

◆은행 파산과 함께 무너진 꿈

스리랑카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카민두 씨는 2005년 한국에 처음 들어왔다. 한국 돈 기준으로 한 달에 30~35만원 안팎의 월급을 벌던 스리랑카에서는 살아갈 길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한국에 가면 돈을 더 많이 번다"는 얘기를 들은 카민두 씨는 2005년 취업비자를 받아 한국에서 일을 시작했다. 벌이는 월 130만원 이상으로 스리랑카에 있을 때보다 훨씬 나았다.

비자 만료 시점이었던 2008년, 비자 갱신을 위해 다시 스리랑카로 돌아갔을 때 지금의 아내 잔니(가명'30'여) 씨를 만났다. 짧은 연애를 하고 바로 잔니 씨와 결혼을 한 카민두 씨는 행복한 신혼생활을 뒤로하고 취업비자를 받아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다. 스리랑카에 혼자 있는 것이 힘들다며 아내도 2010년 한국으로 왔다.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일해서 번 돈 중 상당액을 스리랑카에 있는 본가로 보냈는데 스리랑카의 은행이 파산하면서 본가에서 저축해오던 돈이 모두 날아가 버린 것이다.

"막막했어요. 돈을 모아 스리랑카에 집을 지어 아내와 같이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는데…"

돌아갈 수 있는 돈을 마련하지 못한 카민두 씨 부부는 일단 한국에 남기로 결심했다. 카민두 씨는 건설 현장 일용직을 전전했고, 저녁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자주 찾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로 요리를 만들면서 돈을 벌었다. 아내 잔니 씨도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일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설령 일자리가 생겨도 한두 달 정도 하는 날품팔이 정도였다.

◆힘든 삶 속에 태어난 복덩이였는데…

그러던 중 지난해 잔니 씨의 뱃속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는 것을 알았다. 힘든 타국살이에서 맞은 큰 기쁨이었다. 잔니 씨는 지난달 18일 제왕절개를 통해 아들 힌산드를 출산했다.

안타깝게도 새 생명을 맞은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힌산드를 낳은 지 2주일이 되던 날 힌산드의 몸이 갑자기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병원에 가고 싶었지만 비싼 병원비 때문에 집에서 열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1주일을 기다려도 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카민두 씨 부부는 힌산드를 집 근처의 소아과 병원으로 데려갔다. 병원에서는 힌산드를 살펴보더니 "종합병원으로 가라"고 말했다.

힌산드를 안고 구미의 한 종합병원을 찾은 카민두 씨 부부는 그곳에서 박테리아성 뇌수막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박테리아가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힌산드의 뇌로 침입해 염증을 일으킨 것이다. 병원에 처음 왔을 때 힌산드의 상태는 심각했다. 1주일 동안 고열에 시달린데다 패혈증 증세까지 보였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병이 다 나아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했고, 심할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했다.

"힌산드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난 뒤 아내는 매일 눈물을 흘렸어요. 식사도 하지 못했어요. 제가 '힌산드에게 모유라도 먹이려면 네가 뭐라도 먹어야 된다'고 달래자 그때부터 밥을 조금씩 먹기 시작하더군요."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아내는 산후조리를 해야 해 힌산드를 챙기는 것은 카민두 씨의 몫이 됐다. 힌산드가 병원에 입원한 뒤부터 카민두 씨는 매일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씩 신생아실에 들러 힌산드에게 먹일 모유를 간호사에게 맡기고 간다. 먼발치서 힌산드의 모습을 보고 나면 카민두 씨는 이런저런 걱정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신생아실 앞 벤치에 앉아 운 적도 많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카민두 씨의 부성이 통해서인지 힌산드는 빠르게 건강을 되찾고 있다. 열도 떨어지고, 외부자극에 대한 반응도 아직은 다른 신생아들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1주일 넘게 고열을 앓은 탓에 뇌 기능의 일부나 청력 등 고열에 의해 신체 일부가 손상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걱정은 병원비다. 힌산드가 입원한 뒤 치료비, 약값, 인큐베이터 이용비 등을 모두 합치니 2주 만에 병원에 내야 할 돈은 700만원이나 됐다. 병원에서는 "병원비만 1천만원이 넘을 거라 예상했지만 다행히 힌산드의 회복 속도가 빨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카민두 씨는 병원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다. 카민두 씨는 아내의 출산 후 한 달 넘게 일을 나가지 못했다. 지난달 받은 월급으로 이달 생활비로 쓰며 버티고 있지만 다음 달은 어떻게 버틸지 걱정이다. 집세를 달라는 집주인의 독촉 문자도 날아와 카민두 씨는 마음이 급하다.

돈을 모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한 달 일한 품삯은 약 130~140만원인데, 이 중 집세로 월 40만원을 내고 스리랑카에 있는 본가에 남은 돈의 절반 가까이 보내고 남은 돈으로 생활해야 했기 때문에 저축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카민두 씨는 힌산드가 빨리 나아 아무 문제 없이 자라기를 기도할 뿐이다. 태어나자마자 심하게 병을 앓았기에 자라는 과정 또한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힌산드를 어디서 키워야 할지도 고민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어디서 어떻게 키워야 할 지가 고민입니다. 아이가 건강을 회복하고 나면 '스리랑카로 돌아가자'고 아내를 설득해 볼 작정입니다. 힌산드를 잘 키울 수 있도록 신께 기도드릴 뿐입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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