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흥의 이야기가 있는 음악풍경] 안드레아스 숄 '백합처럼 하얀'

입력 2013-05-18 08:00:00

황동규 시인은 '겨울날 아내는 요즘 들어'라는 시에서 "안드레아스 숄의 가성(假聲)을 들으며 면도를 하다가 턱을 베었다"라고 노래한다. 시인이 턱을 베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나 아직은 내 성대(聲帶) 속에 남아 있는 저 걸쭉한 성(性)의 어둠을 다 부셔낼 수는 없다. 어둑한 마음속에 불끈 솟아 있는 산봉우리를 올려보며 한번 부르르 몸을 떤다'라는 시구를 보면 어쩌면 짐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숄은 카운터테너(countertenor)다. 카운터테너는 테너를 넘어선 남성의 성악 음역으로, 여성의 음역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가끔 여성의 알토를 담당하는 남자 가수를 일컫는 용어다. 지금은 훈련을 통해 남성이 여성의 목소리(정확하게 말하면 음역)을 담당하지만 19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카스트라토라는 여성의 음역을 담당하는 남성가수가 있었다.

카스트라토는 사실 교회에서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비극적으로 탄생한 결과물이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린도전서 14장 34절)는 중세 시대에 여성의 지위를 억압하려는 의도로 이용되었다.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남성 성직자들은 교회에서 여자가 노래하는 것과 무대에 여자가 서는 것을 금했다. 따라서 교회는 여자의 음역을 담당할 수 있는 남성이 필요했다. 남성은 소년기를 지나면서 음역이 내려가는 변성기를 겪게 된다. 이 변성기를 겪기 전에 거세를 통해 남성 호르몬의 생성을 억제하여 소년기의 목소리를 그대로 유지하게 만든 것이 카스트라토였다.

실제로 이 카스트라토는 18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이탈리아에서만 해마다 6천 명이 넘는 소년들을 카스트라토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든도 성당의 합창단에서 노래하면서 고환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카스트라토가 될 뻔했지만 배탈이 나 수술이 연기되면서 평생 소년의 목소리로 살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만일 하이든이 카스트라토가 되었더라면 우리는 그의 음악들을 들을 수 있었을까?

19세기 들어 인권이 신장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게 되면서 교회에서도 성경의 해석도 달라져야만 했다. 더구나 자신의 성을 잃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소년들의 운명은 너무나 비인간적인 것이었다. 화려한 조명 앞에 나설 수 있는 카스트라토는 불과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외의 카스트라토는 결국 자신의 불완전한 성에 절망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 카스트라토는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소년들의 몫이었다. 결국 카스트라토는 법적으로 금지되었고 무대 위에서 성악(특히 오페라)에서 여자의 음역을 담당할 새로운 남자 가수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것이 카운터테너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카운터테너의 목소리를 처음 듣는 이들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성인 남자라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숄은 1967년 독일 태생이다. 음반의 표지에 나오는 그는 아직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앳된 소년처럼, 얼핏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해서 그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그의 목소리가 부드럽고 화사한 연유를 알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190㎝가 넘는 훤칠한 키를 가진 중년 남성이다. 어쩌면 여기에 그의 매력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1980년대 바로크 시대의 악기와 기법으로 연주하는 원전연주의 열풍으로 인해 각광받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30여 종의 음반을 녹음했다. 특히 자신이 작곡한 '백합처럼 하얀'(white as lilies)이 담겨 있는 음반 'Three counertener'는 그를 대중에게 부각시킨 가장 유명한 음반이다.

몇 년 전 캄보디아의 시엠립에서 프놈펜으로 가는 쾌속정 갑판 위에서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티베트에서 발원해서 중국을 거쳐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가로지르는 메콩강 주변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단한 삶들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아팠다. 완전한 사회주의를 꿈꾸었던 폴포트의 폭력은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어 그들에게 남아 있었다. 사랑에 아파 우는 노래가 슬픈 메콩강으로 흐르고 있었다. 낯선 여행자를 향한 강한 햇살이 묻고 있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잃은 이념이 얼마나 초라한 것인가를….

전태흥 미래TNC 대표사원 62guev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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