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디자인 표절은 창조도시의 걸림돌

입력 2013-05-17 10:39:07

독창적인 '굿 디자인'을 보호 육성하는 환경은 창조도시의 근본 토양이다. 특히 꿈 많은 전공 학생들의 기발한 발상을 키우는 디자인 교육이나 패기 넘치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참신한 구상을 받아들이는 도시 행정은 도시, 건축, 조경, 산업, 시각 등 모든 디자인 분야의 연구와 창조산업을 이끄는 중심체이다. 창조산업의 에너지원인 만큼 늘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받아들여야 한다. 디자인 공모전도 그러한 기회의 하나다. 문제는 얼마나 제대로 검증하고 받아들이느냐 하는 데 있다.

관련 학회는 물론 기업, 단체, 정부 기관, 전국의 크고 작은 도시에서는 아이디어를 구하는 수준에서부터 건설과 제작을 위한 전문 설계에 이르기까지, 최고 작품을 얻고자 수많은 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다. 해마다 천 개도 넘는 다양한 공모전이 있다 하니, 기회는 활짝 열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회사 경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전문가라든지 도전 자체보다 당선 기회에 더 신경 쓰는 학생은 작품 선정의 가능성을 미리 따져서 출품 여부조차 저울질하는 실정이다. 심지어 한 작품을 여기저기 출품하는 웃지 못할 경우도 생긴다. 게다가 1등만이 인정받고 혜택을 받는 풍토도 각박하다. 그러하니 아무리 공모전을 개최한들 우수 작품이 제대로 접수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 이유가 여럿 있으나, 심사 자체를 불신하는 경우가 제일 많다. 탈락자의 항변을 들어보면 자기 작품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인정하지 않고 심사 탓으로 돌리기 일쑤다. 감성적인 속성을 지니는 디자인 작품을 객관적 잣대로 엄격히 심사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결국 기획에서부터 심사 자구성 그리고 작품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보다 조직적이고 전문적으로 경영해야 한다. 특히 심사자의 자질이 중요하니, 공정성에 더하여 작품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는 심사 능력을 철저히 따져서 구성해야 하고, 심사 내용과 경과 자체도 공개해야 한다.

게다가 창의성이 가장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할 디자인 공모전에서 모방과 표절 시비까지 있다고 한다. 논문 표절처럼 디자인 표절 또한 남의 것을 제 것인 양 훔치는 짓이니 지탄받아 마땅하다. 특히 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물건으로 남으니 그 피해는 더 크다. 그런데 명확히 비교할 수 있는 글이나 숫자와 달리 그림으로 표현된 디자인 자체를 보고 남의 것을 베끼거나 표절했다고 판정하기는 대단히 애매한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같은 모양일지라도 과연 모방한 것인지 또는 어느 정도 비슷해야 표절했다고 볼 수 있는지 그 정도와 범위가 불명확하다.

물론 특허와 같은 법적 보호가 있고 시공 사례가 존재하고 수많은 작품 열람이 가능하며 공개 발표되는 기회가 많긴 해도, 여전히 교묘한 표절 여부를 걸러내는 안전장치로는 부족하다. 게다가 인터넷을 검색하면 이 세상 거의 모든 디자인을 순식간에 다 찾아볼 수 있는 반면, 심사자가 평소에 그렇게 철저히 파악해서 심사장에서 그러한 모든 디자인을 다 알고 기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설령 표절 시비에서 벗어났다 해도, 우리 도시에는 뭔가 유사하거나 많이 본 듯한 디자인이 넘쳐나고 있다. 디자인 아류도 너무 흔하다. 그러한 모방과 추종은 결국 도시 정체성이 흐려지고 디자인 연구 자체를 쇠퇴하게 만든다. 하물며 디자인 표절은 선의의 탈락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물론 다른 나라, 다른 도시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디자인 표절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 산업 분야에서는 당연히 정당한 상도의를 바로 세워 페어플레이를 해야 한다. 하나 치열한 경쟁 체제 아래 수단을 가리지 않는 시장에서 자체 정화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슈퍼 갑'이랄 수 있는 도시 행정 분야가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 관리자의 입장에서 최적안을 가려내고 육성하는 터전을 제대로 펼쳐야 한다. 그런데 비록 유능하다 해도 자칫 관료주의의 속성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최상의 디자인을 알아보는 능력도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결국 학(學)의 견제가 필요하다. 교육기관에서는 전문가 윤리와 프로 정신을 강화시켜야 한다. 디자인계의 풍토를 가장 잘 리드할 수 있는 위치인 만큼 그 위상을 지켜야 한다.

산관학이 제자리를 지키면서 적절히 연계할 때, 디자인 표절은 발 디딜 틈이 없고, 창조산업으로서 도시의 디자인은 흥할 것이다.

김영대/영남대 교수·건축학부 ydkim@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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