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앨리샤의 예방접종을 하러 동물병원에 갔더니 맡겨진 강아지들이 많았다. 그중 몇 마리가 주인이 없는 낯선 환경 때문인지 너무나 우렁찬 목소리로 합창을 해댔고 나는 녀석들의 아우성에 귀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보다 청각이 훨씬 좋은 고양이인 만큼 나보다 더 괴롭지 않을까, 행여나 놀라지는 않았을까 하고 걱정스레 이동장 안의 앨리샤를 들여다보니 앨리샤는 별다른 기색 없이 그저 나와 마주친 눈만 끔벅였다.
체셔와 앨리샤를 보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고양이는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굉장히 주관적으로 반응한다. 동물병원에서 만난 강아지들의 짖는 소리나 주변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공사소리, 윙윙거리는 청소기 소리처럼 우리가 시끄럽다고 여기는 소리들에 녀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잠을 청한다. 때로는 소음에 너무도 무덤덤함 모습에 '우리 집 고양이들 귀가 좋지 않나?' 싶다가도 통조림을 따는 소리나 자신의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자그마한 소리라도 들리면 벌떡 일어나 다리에 몸을 비벼오는 털 뭉치들을 보면 영락없이 고양이는 좋은 청력을 가졌음이 틀림없다. 가끔 내가 실없이 그냥 이름을 불러대는 소리에 귀만 뒤로 젖힌 채 고개도 안 돌리는 녀석들을 보면 얄밉기도 하지만 앞선 행동거지들을 미루어 생각해보면 녀석들은 자신에게 필요 없는 소리가 들려도 안 들린 척 넘길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 같다.
이렇게 세상 소리를 자체적으로 걸러 들으며 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 고양이에게 결코 흘려듣지 못하는 소리가 있다. 바로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의 지저귐이다. 한 번은 어머니가 창 밖에 설치된 에어컨 냉각기 위에 화분을 올려 둔 적이 있었다. 어느 날 그곳에 새가 놀러 온 것을 본 어머니가 곡식도 화분 위에 함께 놓아두었고, 물과 먹을 것이 있어서인지 집 근처 새들이 종종 쉬었다 가는 휴식처가 되었다. 새들은 모이를 먹거나 물에서 목욕을 하기도 했고, 이런 새들의 푸드덕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들리면 체셔는 거실부터 안방까지 안절부절못하고 냥냥거리며 우리에게 새가 왔다는 것을 알렸다. 그리고는 살금살금 창틀까지 다가가 꼼짝도 않고 앉은 채로 새들이 떠날 때까지 지켜보곤 했다. 그리고 새가 떠난 자리를 맴돌면서 아쉬워했다.
새들의 입장에서 고양이는 천적이나 다름없겠지만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체셔에 놀라거나 도망치진 않았다. 가끔 새를 물어온다는 고양이의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어차피 체셔와 새 사이엔 유리창을 두고 있었기에 그 어느 쪽도 다칠 일은 없었다. 덕분에 새들은 휴식처를 하나 더 얻었고 체셔에겐 매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친구가 생겼다. 이전까지 무료한 체셔의 일상에는 활기가 생겼고 이런 체셔의 즐거움은 우리가 그 집을 떠날 때까지 줄곧 계속 되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이사를 했고 인근에 산이 있었던 저번 집과는 달리 집 주위가 온통 건물들이기에 좀처럼 날아가는 새를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체셔는 지금도 근처의 날아가는 새의 지저귐 소리가 들리면 밥을 먹다가도 곧장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달려가곤 한다. 체셔의 허전함을 달래주기 위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텔레비전이나 음향기기를 통해 새소리를 들려주면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이처럼 나로서는 분별할 수 없는 소리를 고양이들은 잘 구별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아무래도 고양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소리는 잘 알아듣고 필요하지 않는 소리를 걸러 듣는 능력뿐만 아니라 꾸며진 소리와 진짜 소리도 잘 판단할 수 있는 부럽기 그지없는 탁월한 청력의 소유자가 아닐까 싶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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