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할 만한 스승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라고들 한다. 수업에 변화를 주거나 학급 담임 맡기를 꺼리고, 신참 교사에게 직무 연수를 떠넘기는 교사들이 많다는 비판이 낯설지 않다. 교사가 사명감과 열정을 잃으면 아이들부터 눈치를 챈다. 아이들이 그런 교사의 말을 제대로 들을 리 만무하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교사의 책임만 묻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고 교사의 권위를 인정해주지 않는 풍토에서 교사가 역량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이다.
교사, 학생, 학부모 간 신뢰가 무너졌다는 이야기는 암울하게 들린다. 그러나 여전히 학생들에게 한 발 더 다가서려고 애쓰는 교사들이 있기에 희망도 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그 같은 교사들을 만났다.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 주는 그들은 천상 '선생님'이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아이들은 저마다 크든 작든 상처가 있어요. 같은 아이라도 교실 안팎에서 모습이 다르기도 하고요."
32년째 교단에 서고 있는 대구 서도초등학교 조춘숙(54'여) 교사는 지난해 새로운 일을 벌였다. 주로 1, 2학년을 맡다 처음으로 6학년을 맡은 후 반 아이들을 집에 데려가 하룻밤씩 재우기 시작한 것.
"어른들이 보기엔 아직 어리지만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들이라 나름 진로, 학습 등에 대해 고민이 많고 예민한 시기죠. 어떻게 하면 잘 챙겨줄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낸 아이디어였어요."
목요일 오후가 되면 조 교사는 자신의 차에 아이들을 태워 대구수목원 인근이 있는 친정어머니댁을 찾았다. 아이들과 함께 이곳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따고 시장에서 삼겹살을 사는 등 장까지 본 뒤 집으로 돌아와 푸짐한 식탁을 차렸다. 배를 채운 뒤엔 집 근처 두류공원을 함께 산책했다. 음식을 준비하고 함께 걷는 동안 아이들과 조 교사는 사소한 고민거리부터 앞으로의 꿈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나눴다. 이튿날 아침엔 토스트와 과일 등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함께 등교했다.
"한 아이 당 대여섯 차례 제 집을 거쳐 갔어요. 가정, 학업 등 다양한 문제로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던 아이들은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고 전 귀담아들었습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겐 큰 위안이 될 수 있거든요. 아이들 얼굴이 점차 밝아지는 걸 보곤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가족들도 조 교사의 마음을 잘 헤아렸다. 특히 직장인과 대학생인 남매는 귀찮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꼬마 손님들이 오면 케이크를 사주기도 하고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는 등 멘토 역할까지 했다.
"올해 담임을 맡은 아이들도 다음 달부터 집에 데려가 재울 생각이에요. 작년 이야기를 들었다며 '우리는 언제 선생님 집에 가느냐'고 자꾸 물어요. 주변에서 힘들지 않냐고 묻는데 그런 건 없어요. 오히려 제가 아이들에게서 받는 게 더 많습니다. 함께 어울리다 보니 제가 더 재미있고 행복해지거든요."
채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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