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은퇴의 재발견] <2부> 행복한 은퇴자들 ⑥여행편지 배달부 구술서 씨

입력 2013-05-11 07:08:05

여행의 즐거움 '배달' 친구들과 e메일 소통

중국 구채구를 다녀와서 쓴 여행 후기의 한 부분.
중국 구채구를 다녀와서 쓴 여행 후기의 한 부분.

'와~ 예쁘네요.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다음편이 기다려진다. 친구.'

쏟아지는 답장에 흐뭇해하는 구술서(67'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서한2차아파트) 씨. 최근 소개한 비슬산 참꽃축제에 대한 반응을 보며 그는 들떠 있었다. 이 기분에 또 여행 후기를 준비하게 된다고 웃는다. 중독성이 강한 취미란다.

그는 2008년 40년 근무한 서구청을 퇴직했다. 퇴직 후 좋아하던 여행을 다니며 떠남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이왕이면 그 즐거움을 오랫동안 나누고 싶어 같이 간 사람들에게 여행 후기를 보냈다. 반응이 나쁘지 않자 용기를 냈다. 지인들에게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한 달에 서너 차례 기행문을 작성해 메일로 보내고 있다.

구 씨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깨소금 맛이라고 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귀동냥하고 건강에 좋은 내용이나 재미있는 뉴스가 있으면 지인들에게 메일로 보내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그들이 읽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즐겁다고 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살아있어 정말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는 구 씨는 건배사조차 '지금 이대로'다. 그의 행복한 '지금'을 담아봤다.

-컴퓨터가 어렵지 않은가.

"잘 다루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고 메일을 발송할 정도다. 퇴직 후 좀 더 예쁜 기행문을 만들기 위해 컴퓨터 사용법을 배웠다. 지금도 사진에 대해 더 배우고 싶어 신청해둔 상태다.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정도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여행을 하고도 기록하지 않으니 곧 잊어버렸다. 간 곳을 좀 더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 시작한 것이다. 여행지가 정해지면 미리 그곳에 대한 자료를 컴퓨터를 통해 모은다. 그리고 현지에 가서 안내문과 사진을 촬영하고 가이드가 있으면 그의 말을 일일이 적고 메모한다. 집에 오면 바로 정리한다. 보통 여행을 갔다 오면 정리하는 데 2, 3일 걸린다. 그 후 내용을 메일로 보낸다. 이렇게 하면 갔던 곳의 내용을 잘 알 뿐 아니라 오래 기억한다. 그리고 간 곳의 즐거움을 많은 사람과도 나눌 수도 있다. 글 솜씨와 내용은 많이 부족하지만 모두들 즐거워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여행 블로그를 만들 생각은 없나.

"그 정도는 아니다. 늘 새롭게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을 것 같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좋아하는 사람들과 여행의 기쁨과 의미를 나누고 싶을 뿐이다. 아직 자식들도 모른다. 내가 좋아 즐기는 수준이다."

-한 달에 몇 번씩 여행 기행문을 쓰는지.

"기행문은 한 달에 3, 4건을 보낸다. 그리고 건강에 대한 소식이나 꼭 알아야 하는 내용 등을 합해 10건씩 메일을 보내는 정도다. 보내는 사람도 많지 않다. 50명 정도에 불과하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몸부림에 가깝다고 봐 주면 좋겠다."

-여행이 스트레스도 되겠다. 즐기기보다는 기록하고 자료를 모아야 하기 때문에.

"그것도 즐거움이다. 남들은 그냥 보지만 나는 알고 본다. 예습을 통해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물론 해외여행 후기는 스트레스다. 말과 글이 잘 통하지 않아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어렵고 그것을 정리하려면 1주일 넘게 꼬박 작업해야 한다. 중국, 태국, 일본 등의 해외여행기는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 지금도 간혹 보면 재미있다."

-공부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퇴직하고 바로 대구박물관대학에 신청해 공부했다. 거기서 우리나라 사찰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동화사에서 운영하는 불교대학에 2년 동안 다녔다. 정확하게 알아야 여행지 소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배워야 한다. 평생 배워야 늙지 않고 뒤처지지도 않는다."

-친구들끼리 십시일반 돈을 모아 기원도 만들었다는데.

"바둑 좋아하는 친구 7명이 모여 돈을 조금씩 내 기원을 만들었다. 운영비는 기원 입장료로 충당하고 있다. 큰 소득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바둑도 둘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좋고 만남의 장소도 돼서 일석이조다. 퇴직 후 친구끼리 작은 돈을 모아 공간을 마련하면 취미생활도 즐길 수 있고 종목만 잘 선택하면 수익도 낼 수 있다. 이런 형식은 퇴직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일거리다."

-나이 들어 친구는 어떤 의미인가.

"늙으면 돈 없는 사람보다 친구 없는 사람이 더 불쌍하다. 나이 먹을수록 친구가 있어야 한다. 서로 어려움도 이야기하고 위로도 받을 수 있다. 친구들이 부르면 모든 일을 제치고 한숨에 달려간다. 불러줄 때 무조건 간다. 술 한잔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즐겁게 취한다."

-나이 들면 쉽게 노여워져 친구 관리도 쉽지 않다는데.

"조금만 참으면 된다. 시간이 가면 시시비비가 저절로 가려지기 때문이다. 친구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도 내가 재미있게 사는 방법이다. 나도 건강해야 되지만 친구도 건강해야 더 즐겁다. 친구들에게 잘해 주고 싶다."

-지금도 매일 산에 가는가.

"원래는 산을 좋아하지 않았다. 1990년 팔공산 자연공원관리소에 근무하면서 산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산을 자주 갔다. 퇴직한 후로는 매일 오전이면 빠짐없이 집을 나선다. 거기서 다른 사람과도 사귀고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것도 함께 먹는다. 산은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자연히 여행 후기도 산에 대한 소개가 많다."

-아내와 함께 산행하는지.

"아내는 산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혼자 다닌다. 내가 가는 것조차 싫어했다. 빨래 때문이다. 매일 엄청난 빨랫감이 나온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직접 빨래한다. 그 후로는 산에 가지 마라는 이야기가 쑥 들어갔다."

-하루 일과를 간략하게 알려 달라.

"아침밥은 스스로 차려 먹는다. 아침을 먹고 난 후 간단하게 먹을거리를 넣고 뒷산인 와룡산에 올라간다. 왕복 8㎞쯤 된다. 오전 8시 30분에 가서 오전 11시 30분에 온다. 집에 와서 점심 먹고 컴퓨터에 앉아 오후 3시까지 자료검색을 한다. 낮잠은 한 번도 자 본 적 없다. TV도 잘 보지 않는다. 3, 4시경 친구들과 함께 마련한 기원에서 바둑을 둔다. 의기투합하면 술도 한잔한다. 밤에 컴퓨터에 앉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검색하면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사는 게 별건가. 이런 소소한 재미가 최고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사진:김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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