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정치투쟁, 속고 속이는 '투서 음모'…『조선괴서, 조작의 역사』

입력 2013-05-11 07:22:22

조선괴서, 조작의 역사/ 이시언 지음/ 해례원 펴냄

중종은 연산군의 폭정에 대한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다.(1506년 9월 2일). 반정 후 104명의 정국(靖國)공신이 책봉되었고, 이들 공신들이 국정을 주도했다. 반정공신들 덕에 뜻하지 않게 권좌에 오른 중종은 이들의 눈치를 살필 뿐 힘을 펼칠 수 없었다.

그러나 반정에서 별다른 공로가 없던 인물들까지 공신으로 권력을 누리자 삼사의 비난이 이어졌고, 상당수 공신들이 사직했다.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중종은 조광조를 비롯해 사림 출신의 관료를 등용시켜 개혁정치를 펼치려 했다.(1515년)

사림들은 중종의 강력한 후원을 업고 점점 세력을 넓혔고, 그들은 이상국가를 만들기 위해 임금을 가르쳤다. 그 중심에 조광조가 서 있었다.

'조광조가 말하자 중종은 얼굴빛을 가다듬으며 들었고, 서로 진정으로 간절히 논설해 날이 저무는 줄도 모르다가 환관이 촛불을 들고 가자 그제야 그만두었다(1519년 7월)' -중종실록-

그러나 엄격한 규율과 밤늦은 공부에 지친 중종은 조광조를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조광조는 임금이 진실로 자신들과 뜻을 같이해 성리학적 이상국가를 건설하려는 줄 알았지만, 중종은 싫증을 느끼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조광조는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조광조가 실시한 현량과(賢良科'과거를 통하지 않고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인재를 천거해 임용하는 것)를 통해 입궐한 28명 모두 사림 출신이었다.(1519년 4월 13일) 또 사림들은 국왕을 압박해 정국공신 중 72%의 삭훈을 관철시켰다.(1519년 11월 11일)

위기감을 느낀 공신들과 개혁정치에 피로와 불안을 느낀 중종의 반격이 시작됐다. 대궐 후원의 나뭇잎에 꿀물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씨를 써서 벌레들이 파먹게 하여 '조씨가 왕위 된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사림 출신 관료들이 나라를 어지럽힌다는 괴문서가 화살 끝에 매달려 날아들기도 했다.

1519년 11월 16일 중종은 홍경주'남곤'김전'정광필 등 주요 대신을 비밀스럽게 대궐로 불렀다. 이들과 뜻을 같이한 임금은 곧바로 조광조를 비롯한 기묘사림의 주요 인물을 잡아들였다. 죄목은 당파를 만들어 자신들을 따르는 사람은 천거하고 그렇지 않은 부류는 배척했으며, 서로 연합해 국정을 어지럽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즉각 유배되었고(16일) 삭훈되었던 정국공신은 원래대로 회복되었다(21일).

조광조는 임금의 친국을 요청했다. 임금이 공신들의 거짓말에 속아 자신들을 가두었을 뿐 대화를 나누면 오해가 풀릴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때까지도 조광조는 임금의 마음이 돌아섰다는 것을, 임금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임금이 엄격한 규율과 개혁에 피로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일부 만류하는 신하도 있었지만 중종은 그해 12월 조광조를 비롯해 70명에게 사약을 내렸다. 기묘사화의 끝이었다.

책 '조선괴서, 조작의 역사'는 괴서, 투서, 음모, 조작 등을 통해 조선시대의 사화, 옥사, 환국 등을 들여다본다. 조선시대 정치세력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10가지 괴서 사례를 담고 있으며, 연산군과 훈구와 사림, 중종과 조광조, 선조와 정여립, 이이첨과 광해군, 예종과 공신집단, 성종과 정희왕후, 영조와 노론, 숙종과 김석주, 한명회와 살생부, 문정왕후와 윤원형이 펼쳤던 권력투쟁과 음모를 다룬다.

왕은 신하들을 속였고, 신하들은 왕을 속였다. 속고 속이며 권력싸움을 하느라 백성의 안녕은 뒷전이었다. 현종과 숙종 때 전국에 기근과 역병이 닥쳐 수많은 백성이 죽거나 도적이 되었다. 그 와중에도 왕과 신하들은 권력싸움에 빠져 백성을 돌아보지 않았다.

지은이 이시언은 1968년 강원도 태백 출생으로 일본어 번역가이자 역사 연구가로, 근래에는 일제의 조선침탈과 관련한 음모와 조작을 파헤치고 있다. 312쪽, 1만4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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